이 활자는 민간의 낙동계(洛東契)가 만들어 사용하여오던 낙동계자 3만여 자를 구득하고 그에 4만자를 더 주조하여 이름 붙인 것이다.
사가(私家)에서 빌려 쓴 낙동계자에 대한 기록은 윤심(尹深)의 ≪경자증광사마방목 庚子增廣司馬榜目≫ 발문에 보이는데, 1674년(현종 15) 4월에 실시하였던 사마시의 합격자명단을 인출하는 데 낙동계자를 사용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이미 주성(鑄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빌려온 낙동계자는 그 글자가 현종실록자와 매우 흡사하여 뒤에 이를 가려낼 수 없어 활자주인에게 반환치 못하게 되자 인쇄된 ≪전한서 前漢書≫·≪후한서 後漢書≫ 등을 한 벌씩 주기로 하고 정부에서 이 낙동계자를 받아서 교서관으로 이관하였다. 이런 실정으로 보면 낙동계자와 현종실록자는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유사하다.
이 활자는 단아해정(端雅楷正)한 진체자(晉体字)이다. 이 활자의 인본(印本)으로는 현종·숙종·경종·경종개수·영조·정조·순조·헌종 및 철종 등의 실록을 비롯하여 열성어제(列聖御製), 각종 지장류(誌狀類), 일반전적들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실록 가운데 ≪헌종실록≫에서부터 활자가 현저하게 깨끗하여진 것으로 보아 ≪헌종실록≫을 찍을 때 대대적인 보주(補鑄)가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으나, 그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