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후(縣侯)는 왕족이 아닌 이성(異姓)에게 수여되는 작위, 즉 이성봉작제(異姓封爵制)의 작호이다. 국공(國公)·군공(郡公)·현후·현백(縣伯)·개국자(開國子)·현남(縣男) 중 세 번째 서열로, 식읍(食邑) 1,000호에 봉해졌다.
고려시대의 봉작제는 크게 종실봉작제(宗室封爵制)와 이성봉작제로 구분되는데, 종실봉작제의 봉작명(封爵名)이 공(公)·후(侯)·백(白)의 작위만 사용하고 주로 국명(國名)으로 수여한 반면, 이성봉작제의 경우 공·후·백·자(子)·남(男)의 5작을 모두 사용하고 군(郡)이나 현(縣)의 명칭으로 수여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
현후를 비롯한 이성봉작제는 봉작의 실제 사례가 980(경종 5)에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보이며, 1076(문종 30)에 종실봉작제와 함께 제도적으로 일괄 정비되었다. 1298(충렬왕 24) 이후 폐지되었다가 1356(공민 5) 부활되었고, 1362년 폐지되었다가 1369년 부활되었으며 1372년(공민왕 22) 다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