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에서 북쪽으로 12㎞ 지점에 위치하여 있다. 예로부터 마을이름인 화죽(花竹)을 따 화죽제언(花竹堤堰) 또는 화죽평제언(花竹坪堤堰)으로 불렸으나, 1854년(철종 5)혜정제로 명명하였다.
축조연대는 혜정제비기(惠政堤碑記)에도 “예로부터 제방이 있었다(自古有堤)”라고만 되어 있어 자세히 알 수 없다. 1850년 화죽제언이 큰 홍수로 파괴되자 인근에 살던 사대부 김영작(金永爵)이 200꿰미[緡]의 돈을 이재민에게 대여하여 우선 구호하면서 1,000여명의 장정을 동원하여 제방복구에 힘썼다.
또, 이 사실을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화죽평 인근의 조세 3년분을 면제받아 이를 복구비에 충당하매, 남녀노소가 모두 서로 권하며 복구사업에 참여하여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1854년 복구하고, 은혜로운 정사에 힘입어 복구하였다는 뜻으로 혜정제라 개명하였다.
철종 연간에는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발호로 국력을 집중한 본격적 수리사업은 없었고, 이 혜정제 복구와 황해도 남대지(南大池) 준설이 고작이었다. 둘레는 636척으로 꽤 넓었으나, 깊이는 3척으로 그리 깊지 않았다. 현재는 공군비행장의 부지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