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 진언종(眞言宗)의 초조(初祖)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생. 젊어서 수달을 잡아먹고 뼈를 마당에 버렸더니, 그 뼈가 제 집으로 돌아가 새끼 다섯 마리를 품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참회하고 출가하였다.
665년(문무왕 5) 당나라로 가서 인도의 고승 선무외(善無畏)에게 밀교(密敎)의 진의(眞意)를 배우고자 하였으나, 동쪽 오랑캐놈은 법을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섬겼으나 끝내 허락하지 않자 머리에 불을 담은 화로를 이고 입실(入室)을 구하였다.
그 때 정수리가 터지고 우레같은 소리가 났으며, 머리에 입은 상처가 임금 왕(王)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왕화상(王和尙)이라 하였다. 그 뒤 선무외의 비법을 전수하여 신통(神通)으로써 당나라 고종(高宗)의 딸인 공주의 병을 고쳤으며, 신라에 돌아온 다음에도 여러 이적(異蹟)을 나타내었다.
그로 말미암아 신라에는 밀교가 크게 융성하였는데, 천마산의 총지암(總持庵), 무악산의 주석원(呪錫院) 등은 모두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밀교사원이었다. 귀국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혜통이 귀국한 것이 665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가르침을 받았다는 선무외가 중국에 온 것은 719년(성덕왕 18)이기 때문에 연대에 많은 혼돈이 있다. 따라서, 그 진위를 단정짓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