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혜현(惠現). 특히, 삼론학(三論學)에 능통하였으며, 수도(修道)의 뛰어남으로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원래 수덕사(修德寺)에 머무르면서 『법화경』을 강(講)하였는데, 나중에는 번거로움을 벗어나 달라산(達拏山)으로 은거하였다.
죽은 다음 유해를 거두었는데, 오직 혀만 생시와 다름없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 혀를 석탑에 안치하고 공경하였다고 전한다. 당나라 정관연간(貞觀年間)에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특별히 스승을 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요히 있었으나 곳곳에서 그의 덕형(德馨)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전기(傳記)가 만들어졌으며, 많은 이들의 우러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