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홍진의(洪鎭義). 함경남도 함흥 출신.
1918년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일본유학 중인 1915년 김철수(金綴洙) 등과 함께 비밀결사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을 조직했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함북대의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이 되었다.
1920년 가을 서울에서 김철수, 장덕수(張德洙) 등과 함께 일본제국주의의 구축과 사회주의혁명을 표방하는 사회혁명당을 조직했다. 1921년 5월 상해에서 열린 고려공산당(상해파) 창립대회에 사회혁명당 대표로 참가해 중앙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이동휘(李東輝), 박진순(朴鎭淳)과 함께 고려공산당(상해파)의 코민테른 파견 대표자로 선임되어 모스크바로 갔다. 1922년 10월 통일고려공산당을 창립하기 위해 베르후네우진스크에서 열린 대표자대회에 상해파 고려공산당 대표로 참가해 중앙위원이 되었다.
1924년 6월 함흥에서 적기단(赤旗團) 후원회 활동을 벌였다. 1924년 8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1927년 12월 신간회 함흥지회 간사가 되었고 조선공산당 3차 대회[이른바 춘경원당(春景園黨)]에서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