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泓宣, 1905~1979)은 전주 이씨(全州李氏)이고, 속명은 용이(龍頤), 법명은 홍선(泓宣), 별호는 백화산인(白華山人)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종로에서 비단 포목상을 경영한 아버지 응준(應俊)과 어머니 묘행심(妙行心)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외아들로 성장하였다.
홍선은 1928년에 경성예비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에 선암사(仙巖寺)에서 경운 장로(擎雲長老)에게 출가하였다. 이듬해에는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기간 중 일련종(日蓮宗) 대본산을 찾아가 법화 사상에 대한 설법과 강의를 들었는데, 이러한 체험은 훗날 그가 법화 사상에 기반하여 불입종을 세우는 근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홍선은 1935년에는 소요산 백운암(白雲庵)에서 1,000일 안거를 시작하였으며, 1938년에 중국 산서성에 가서 불교 사찰들을 순례하고 돌아왔다. 1940년에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駱山) 기슭에 묘각사(妙覺寺)를 창건하고 포교 활동을 펼쳤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으로 자리를 옮겨 백화암(白華庵)을 창건하고, 6년 동안 안거하면서 참선 수행을 하였다. 이 당시 그는 백화암 대사로 널리 알려졌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1957년 법화 계통의 모임들을 규합하여 일승불교현정회(一乘佛敎顯正會)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다양한 포교 활동과 강연회를 개최하였고, 1965년 12월 8일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을 창종하였다. 대한불교불입종은 그가 입적한 후인 1988년, 대한불교관음종(大韓佛敎觀音宗)으로 종단의 이름을 바꾸었다.
‘불입종’이라는 종명은 ‘부처의 지혜와 식견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묘법연화경』 「방편품」에 있는 ‘불지지견(佛之知見)’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불입종은 법화경의 핵심 가르침을 뽑아 종단의 이름을 만든 만큼, 종단의 핵심 교의인 종지(宗旨)와 종풍(宗風) 또한 모두 법화경에 의거하고 있다. 또한 법화 사상을 토대로 승려 중심의 종단에서 벗어나 승속(僧俗)이 일체가 되는 종단임을 표방하였다.
홍선은 1966년 불입종의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었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포교에 전력하면서 불입종을 크게 발전시켰다. 1970년 한일불교친선회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1971년 정부로부터 보국 훈장(保國勳章)을 받았으며, 전일본불교회의 초청으로 일본 불교계를 시찰하였다. 1973년 마하연불교학생회를 창립하였고, 불교 잡지 『범성(梵聲)』을 창간하여 청소년 교화와 문서 포교에 노력을 기울였다. 1975년 한중불교회(韓中佛敎會) 고문, 1976년 국가총력안보협의회 불교 대표로 추대되었다. 같은 해, 종로 낙산에 묘각사(妙覺寺)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홍선은 1979년 6월 24일, 나이 74세, 법랍 50세로 묘각사에서 입적하였다. 종단장(宗團葬)으로 5일장을 지낸 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오남리 다비장에서 다비하였다. 다비 후 128과(顆)의 사리를 얻어 묘각사 경내에 사리탑을 건립하였다. 저서로는 유문집 『성불도(成佛圖)』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