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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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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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해방 이후 한국일보 편집국장, 국제신문인협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7년
사망 연도
1983년
출생지
서울
목차
정의
해방 이후 한국일보 편집국장, 국제신문인협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내용

서울 출신. 1945년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그 해 편입학하였다. 1947년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에 진학하였으며 1949년『합동통신』 기자로 재직하던 중 1950년 6·25전쟁으로 육군에 입대, 대위로 제대하였다.

1954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아시아재단 후원으로 도미하여 스탠퍼드대학에서 신문학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잠시 경희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1955년에서 1962년 사이에 『한국일보』 외신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을 역임하면서, 국제신문인협회(IPI) 회원을 지냈다.

1962년 『동아일보』로 옮긴 뒤에는 논설위원·편집국장·출판국장·논설주간을 역임하였고, 1980년부터 덕성여자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58년 31세에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한국일보』의 단평란인 ‘메아리’를 비롯한 각종 논평기사를 날카롭게 써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4·19혁명 및 5·16군사정변과 같은 격변기와 군정기, 민정이양 초기에 쓴 사설이나 논평은 이 땅의 민주주의의 위협에 대한 준열한 고발장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항심(恒心:떳떳한 마음)의 발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그의 글은 담담히 흘러내리는 문체이면서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사이 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 않는 일)하는 인간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래서 그는 월간지 『신동아 新東亞』에 ‘화이부동’이라는 고정란을 가지고 달마다 글을 쓰기도 하였다.

「자유인이고자 걸어온 도정」이라는 글에서 “누가 나에게 전공을 묻는다면 ‘나는 저널리스트입니다.’라고 말해 왔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나의 전공은 인간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이 도사려 있었다.”고 그의 인생관을 술회하였다.

또, 국제신문인협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아시아신문재단 사무국장 등의 경력에서 보듯 한국 신문의 국제적인 감각이나 시야의 확대를 위하여 노력하였고, 외신기사에서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형안을 가지고 있었다.

1968년에는 『신동아』에 실린 글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으나 결국, 한때 동아일보사를 떠나기도 하였다. 『프라하의 가을』(1977))·『백미백상(百味百想)』(1984) 등의 저서가 있고, 1988년 1월에는 친지와 동료들이 추모문집 『잃어버린 혁명과 화이부동』을 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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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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