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치만(稚萬). 서울 출신. 홍현주(洪顯周)의 손자로, 홍우철(洪祐喆)의 아들이다.
1859년(철종 10) 18세의 나이로 , 대교와 사간원사간, 부사과를 거쳐 1870년(고종 7) 대사성이 되었다.
우부승지를 역임한 뒤 1873년 이조참의에 임명되었고, 예조참의를 지낸 뒤 1876년 개성부유수, 1877년 이조참판이 되었고, 호군을 거쳐 1878년 향관(享官)에 임명되었다. 정확한 사망연도는 미상이나, 『고종실록』 1884년 2월 초3일조 기사에 “고(故) 참판 홍승억”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78년부터 1884년 사이 어느 해일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