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번 124759. 출생지 미상. 6·25전쟁 끝나가던 무렵인 1953년 1월 3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통신 가설장교로 근무하던 중 1953년 7월 14일 강원도 금성지역의 별우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6·25전쟁의 휴전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피아(彼我:저편과 이편)간에 유리한 지형과 작전상 요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 때 한국군 제8사단은 적 중공군 제20병단 제67군의 3개 사단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한국군은 제16연대를 우측의 612고지에, 제10연대를 690고지에서 720고지에 이르는 좌측에 배치하여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제8사단 제16연대 가설 장교(架設將校)인 홍윤조 소위는 비상가설반 대원 10명을 직접 인솔하여 적의 사격과 포탄 속을 뚫고 끊어진 유선 통신망을 연결하여 통신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방금 연결하고 돌아서기가 바쁘게 박격포의 포탄에 의해 재차 끊어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때로는 직사화력(直射火力)을 뚫고 나가기도 하였다.
7월 14일 홍 소위는 차츰 줄어들어 5명만 남은 대원들과 함께 W-100선의 와이어통을 메고 제1대대의 OP로 향하였다. 선두에서 와이어를 풀어가던 홍 소위는 612고지의 서쪽 경사면의 8부 능선에서 박격포의 포탄의 파편을 우측 대퇴부(大腿部)에 맞고 중상(中傷)을 입었다.
그러나 선혈이 낭자한 하반신을 이끌고 계속 와이어를 풀어가던 홍 소위는 출혈이 심하여 통신병들에게 “연대(聯隊)의 생명선(生命線)을 부탁한다.”라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전사 후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