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치화(穉和). 아버지는 도사 홍선양(洪善養)이다.
1783년(정조 7) 생원시에 합격하여 1801년(순조 1)에 장릉참봉(長陵參奉)이 되었고, 그 뒤 영춘현감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온후낙이(溫厚樂易)하여 읍을 다스림에 있어서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가혹한 판결을 하지 않아 순리(循吏: 법을 잘 지키며 열심히 근무하는 관리)의 기품이 있었다.
백성을 위해서 이(利)를 도모하고 해(害)를 제거하여 한 사람이라도 해가 미칠까 두려워하였다. 그가 죽자 인근 백성들이 달려와 호곡(號哭)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