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총 3책이었으나 제1책만 남아 있다. 책머리에 박기수의 서문과 범례가 실려 있어 편찬 경위와 편찬 원칙을 살필 수 있다.
내용 구성은 권1에 폭원(幅圓)·건치연혁(建置沿革)·읍명(邑名)·관직(官職)·유임(儒任)·향관(鄕官)·장관(將官)·원역(員役)·속읍(屬邑 : 附屬郵·屬鎭)·읍치(邑治)·방리(方里)·호구(戶口)·전결(田結)·부세(賦稅)·재용(財用)·군총(軍摠), 권2에 산천(山川)·성곽(城郭)·산성(山城)·진도(津渡)·도서(島嶼)·필로(蹕路)·교량(橋梁)·봉수(烽燧)·제언(堤堰)·둔전(屯田)·우역(郵驛)(이상 제1책)이 수록되어 있다.
권3에 능원(陵園)·전우(殿宇)·행궁(行宮)·관해(官廨), 권4에 단묘(壇廟)·사원(祠院)·형승(形勝)·누대(樓臺)·지당(池塘)·분사(分寺)·각창(各倉, 附 各邑倉)·각고(各庫)·각전(各廛)·장시(場市)·사찰(寺刹)·성씨(姓氏)·인물(人物)·충신(忠臣 : 附 忠奴)·효자(孝子)·효부(孝婦)·열녀(烈女)·고적(古蹟)·풍속(風俗)·물산(物産)·과시(科試)·영선생(營先生)·읍선생(邑先生)(이상 제2책)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부편(附編) 1, 이읍사실(移邑事實) 부편 2, 승영사실(陞營事實) 부편 3에 축성사실(築城事實)(이상 제3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읍지의 편찬계기는 범례에서 언급하였듯이 정조대에 수원에서 발생한 이읍·승영·축성의 세 가지 변화이다.
즉, 1789년(정조 13) 정조의 아버지인 장헌세자(藏獻世子) 묘의 수원 이전에 따른 수원 읍지의 팔달산 밑으로의 이전, 1796년 수원의 유수영 겸 장용외영(壯勇外營)으로의 승격, 1793∼1796년에 걸친 수원성곽의 축조 등이 세 가지 변화이다. 그에 따라 이전의 수원과는 읍의 치소(治所)·행정구역·도로·강역·도시시설 등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이 읍지는 유수영으로 승격한 지 40년이 경과하여 수원이 새로운 도시 체제로 안정되었을 무렵 편찬된 읍지로서, 새로 건설된 계획 도시인 수원의 전모를 상세하게 기록하여 놓은 귀중한 자료이다.
제1책만이 전하므로 제2·3책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안타깝다. 이 읍지에 붙어 있는 첨지들은 1899년 읍지 작성시의 작업 과정을 보여준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1989년 한국인문과학원에서 발행한 ≪조선시대사찬읍지 朝鮮時代私撰邑誌≫ 제11책에 영인되었다. 그러나 1899년에 편찬된 ≪수원군읍지≫ 2종(규장각도서)이 ≪화성지≫를 저본으로 작성되어 물산조까지 거의 동일한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보이므로 참고할 수 있다.
또, 장서각도서에 있는 ≪수원군읍지≫(1899) 뒤에는 ≪화성지 속편 華城志續編≫이 첨부되어 있다. 이 밖에 정조대에 편찬되어 정조대 이전의 수원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수원부읍지≫ 2종이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