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론절요 ()

불교
문헌
고려, 무인 집권기의 승려 지눌이 당나라 이통현의 『신화엄경론』 중요 부분을 발췌하여 1207년에 편찬한 불교 논서.
이칭
이칭
이장자론절요(李長者論節要)
문헌/고서
편찬 시기
1207년(희종 3)
간행 시기
1207년(희종 3)
저자
지눌(知訥)
권책수
3권 1책
권수제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판본
필사본 (저본은 고려시대 간행 목판본)
표제
절요(節要)
소장처
일본 가나가와현립 가나자와문고(金澤文庫)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화엄론절요』는 고려 무인 집권기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이 당나라 화엄학자 이통현(李通玄, 635-730)이 찬술한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편찬한 불교 논서이다. 지눌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에 의거하여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이라는 수행법을 제시하였으며, 문인들이 이 책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핵심 부분을 발췌하여 3권으로 편집한 『화엄론절요』를 편찬하였다. 국내에는 전하지 않고 일본의 가나자와문고에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다.

정의
고려, 무인 집권기의 승려 지눌이 당나라 이통현의 『신화엄경론』 중요 부분을 발췌하여 1207년에 편찬한 불교 논서.
개설

『화엄론절요』는 고려 무인 집권기에 수선결사를 개창한 목우자 지눌(知訥, 1158-1210)이 당나라 화엄학자 이통현(李通玄, 635-730)이 찬술한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편찬한 불교 논서이다. 이통현은 7세기 말에 새로 번역된 신역의 『화엄경』을 저본으로 하여 수행에 관한 교리적 설명보다 중생과 부처의 본원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이론을 전개하여 기존의 지엄(智儼)·법장(法藏) 등에 의해 수립된 화엄종의 교학 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화엄 사상을 제시하였다. 지눌은 사상과 『화엄경』의 같음과 다름에 대하여 크게 고민하던 중 중생과 부처가 다 같이 근본보광명지(根本普光明智)의 화현으로 중생이 곧 부동지불이이라는 『신화엄경론』의 내용을 보고 크게 공감하여 그것이 『화엄경』의 핵심 사상이며 선종의 돈오(頓悟)와 동일하다고 깨달았다. 이 책은 지눌이 제시한 세 가지 수행문 중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선종 문헌인 『육조단경』 및 『대혜어록』과 함께 수선사의 수행자들이 익혀야 할 기본 문헌으로 중시되었다. 지눌은 만년에 후학들이 40권 분량의 『신화엄경론』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핵심적 부분만 발췌하여 3권으로 편집한 『화엄론절요』를 편찬하였고, 이후 수선사 승려들의 『화엄경』 이해를 위한 기본 문헌으로 널리 학습되었다.

간행 경위 및 현존본의 서지 사항

『화엄론절요』는 1207년(희종 3)에 지눌 본인의 주도로 간행되었는데, 문인인 수선사 승려 충담(沖湛)이 판각을 주관하였고, 역시 문인으로 후에 수선사 제2세 사주가 되는 혜심(慧諶, 1178-1234)판하본을 썼다. 또한 수선사 승려 담령(湛靈)과 수선사 중창을 후원하였던 나주호장(羅州戶長) 진직승(陳直升)과 처 진의금(珍衣金)이 간행 경비를 댔다.

하지만 이때에 간행된 판본은 전하고 있지 않으며, 이때 간행된 판본을 저본으로 한 필사본 1부가 유일하게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요코하마시(橫濱市) 가나자와문고(金澤文庫)에 전하고 있다. 이 필사본은 종이 1매의 앞뒤에 2면씩 기록한 점엽본(粘葉本)으로, 권1 39매(본래 40매 중 제12·36의 2매 누락, 제16 중복), 권2 29매(본래 35매 중 제1·2·7·10·11·13의 6매 누락), 권3 39매(본래 40매 중 제37의 1매 누락)이다. 각 면은 10행이며 행당 글자 수는 20~24자이다.

현존 유일본인 가나자와문고본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의 화엄학승 단에(湛睿, 1271-1347)가 가지고 있던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각 권에 기입되어 있는 붉은색의 구두점은 단에의 선배인 엔슈(圓種, 1254∼1377)가 1295년에 기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엔슈가 가지고 있던 책을 단에가 계승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 책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일본에 전해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간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일본에 전해져 필사·연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엔슈는 송나라 유학 후 귀국하여 많은 전적에 구두점을 찍었던 화엄학자인데, 제1권 말미에는 구두점을 찍은 후 느낀 감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화엄론절요』를 우러르면 태산과 같이 높고, 굽어보면 큰 바다와도 같이 넓다. 내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어서 지금 절요를 애독할 인연을 얻었을까? 이 기쁨, 그리고 불법을 믿는 마음 어디에 비하랴! 다만, 부끄러운 것은 종일 화엄 세계에 있으면서도 그 구극의 이치를 터득하지 못하였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어찌하랴!”

가나자와문고본은 1942년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이종익(李鍾益, 1912-1991)에 의하여 그 존재가 처음 소개되었으며, 1968년에 김지견이 『신화엄경론』 원문과 대조하여 결락된 부분을 보충한 교주본을 간행하였다. 1982년에는 가나자와문고본의 영인본을 저본으로 하고 김지견의 교주본을 대교본으로 한 교정본이 한국불교전서 제4책에 수록되었다.

구성과 내용

전체 3권 가운데 권2의 중반부까지는 『신화엄경론』 중에서 『화엄경』의 핵심적 특성을 정리한 요간(料間) 7권의 내용을 요약하였고, 그 뒤에는 『화엄경』의 주요 문장을 해설한 『신화엄경론』의 수문해석(隨文解釋) 부분을 편의적으로 발췌하였다. 수문해석 부분에는 네 차례 지눌 자신의 견해를 “목우자왈牧牛子曰”의 형태로 밝히고 있는데, 한 곳에서는 법장의 『탐현기』와 지엄의 『공목장』을 인용하여 이통현의 견해를 보충하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통현의 행적을 간략하게 정리한 「화엄경론주이장자행장(造華嚴經論主李長者行狀)」을 수록하였다.

지눌은 이 책에서 이통현이 제시한 주요 이론들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 중생들은 부처의 지혜와 질적으로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자각될 만한 속성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모른 채 업을 일으켜 고통을 받다가 그 고통으로 인해 발심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통현의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눌은 『신화엄경론』의 경문 해석상의 일부 오류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이통현의 잘못이 아니라 이 책을 처음으로 필사한 광초(廣超)의 탓으로 돌리는 등 이통현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지눌은 이통현이 주장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한 『주역』음양오행설 등의 중국의 고유한 사상과 관련된 내용들은 대부분 삭제하였고, 『화엄경』에 등장하는 신중(神衆)들과 수행 계위를 관련시켜 설명한 부분도 인용하지 않았다. 또한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여성 선지식을 자비의 화신으로 보면서 비구승은 자비심의 결여를 나타낸다고 한 부분도 인용하지 않았다. 이는 지눌이 『신화엄경론』의 중국적 또는 통속적 상징 체계를 통한 『화엄경』 해석을 수용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화엄론절요』는 선종의 입장에서 『화엄경』의 사상을 이해하려 한 저술로서 고려시대에 교학 불교와 선종이 사상적으로 대립하던 시기에 선과 교학 불교의 통로를 열고자 시도한 저술로 평가된다. 이 책을 통하여 한국의 선종에서 『화엄경』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심화되었고, 선교 일치의 사상 전통이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책은 한국 불교계에서 『화엄경』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지엄, 법장 등의 구역 『화엄경』 주석서에서 이통현과 징관(澄觀) 등의 신역 『화엄경』 주석서로 변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 중기까지의 승려들이 주로 지엄과 법장의 주석서에 의지하여 『화엄경』을 이해하였던 것과 달리 지눌 이후의 승려들은 대부분 이통현과 징관 등의 주석서를 토대로 『화엄경』을 공부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한국불교전서)華嚴論節要』 4(동국대학교 출판부, 1982)

단행본

金知見, 『華嚴論節要(校注本)』(東京大學文學部, 1968)
『金澤文庫資料全書 佛典第二卷 華嚴篇』(金澤文庫, 1975)

논문

박재현, 「보조지눌의 『화엄론절요』 연구」(『철학』 70, 한국철학회, 2002)
이종욱, 「보조국사의 소록(所錄)인 「화엄론절요」의 신발견」(『불교(新)』 36, 불교사, 1942)
정희경, 「지눌의 『화엄론절요』에 대한 연구 현황 및 과제」(『남도문화연구』 29, 국립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2015)
정희경, 『지눌의 『화엄론절요』 연구』(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최성렬,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중 요간절요의 체계에 대한 연구」(『한국불교학』 21, 한국불교학회, 1996)

기타 자료

「화엄론절요 해제」(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한국불교전서편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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