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승려 해안이 구례 화엄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내력을 수록하여 1697년에 간행한 사적기.
내용
서론 부분은 화엄사의 창건설화와 중수기록으로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인도에서 이곳에 오게 된 경위와 창건, 그리고 자장(慈藏)의 중수사실 등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의상(義湘)이 장륙전(丈六殿)을 건립하게 된 유래와 도선(道詵)이 이곳에 총림대도량(叢林大道場)을 개설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때의 중건 이후 네 차례의 대규모 중수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진되었고, 그 뒤 인조 때 각성(覺性)의 중건 등 두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하였다.
요컨대, 배불(排佛)의 와중에서도 화엄종을 대표하는 도량이었음을 중건 · 중수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하고 있다. 이어서 당우(堂宇) · 유물 · 노주(露柱) · 석탑 · 석경(石經) 등 화엄사의 여러 국가유산과 관련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곳의 석경은 특히 주목받는 유물로서 일제 때 일부가 해체, 수리된 이후, 1961년 재정리된 바 있다.
화엄사의 보물로는 선조의 교지 · 어필 · 고종(古鐘) 등이 있다고 하였다. 산내암자로서 원소암(圓炤庵) 등 모두 14개가 있었다고 하였으며, 그 창건연대와 규모 등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목판본은 1969년정만우(鄭曼宇)의 수정 · 보완에 의하여 활자본으로 유통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사찰 8-화엄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6)
- 「해동호남도지리산대화엄사사적(海東湖南道 智異山大華嚴寺事蹟)」(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불교학보』6,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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