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1735년 전사청(典祀廳)과 외문루(外門樓)를 창건하였다. 1773년 조무(趙懋)가 명륜당을 중수하고, 외삼문(外三門)을 중건하였고, 1786년 향교를 중수하였다. 1950년 6 · 25동란으로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1960년 이종석(李鍾奭)의 주선으로 대성전과 내삼문(內三門)을 재건하였다.
1974년 전교(典校) 박제묵(朴齊默)의 주관으로 명륜당 · 제기고(祭器庫) · 외삼문이 완공되었다. 1973년에 향교 전체를 단청(丹靑)하고 1979년에 번와작업(飜瓦作業), 1980년에 원장(垣墻)의 보수를 하였으며, 1982년에는 홍살문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내삼문 · 외삼문 · 제기고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외삼문을 마주보는 위치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명륜당이 지어졌고, 계단을 올라가면 내삼문이 있으며 그 앞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성전이 위치한다. 또한 그 오른쪽에 제기고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소장전적은 모두 산실(散失)되고 판본이 몇 권 남아 있을 뿐이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