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출신. 간도 용정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백일기도를 하면서 머리를 기르는 등 자신의 모습을 예수의 모습과 흡사하게 만들어 열광적 신비주의의 양상을 나타내었다.
그는 “머리도 예수의 머리, 피도 예수의 피, 마음도 예수의 마음……전부 예수화하였다.”고 하면서 순례의 길에 나섰는데, 서울을 향해 가는 그를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하였다.
그는 도덕적 완전주의를 주장하며 성적 환상(性的幻想)과 연결되어 목가름과 피가름의 교리를 가르쳤는데, 이것이 영체교환(靈體交換)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1933년 5월『영계(靈界)』라는 잡지를 간행하여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전달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1933년 평안도의 안주노회(安州老會)가 그를 비롯하여 한준명(韓俊明)·유명화(劉明花)를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그들의 부흥회 초빙을 금지하였으며, 그 해 가을의 총회에서도 다시 확인되었다.
그의 이러한 신앙형태는 193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서 생성된 신비적·환상적 소종파 운동들의 맥락의 하나를 이루었으나 교단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