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평산 출신. 1910년대 이진룡(李鎭龍) 의진에서 활동하다가 순국하였다.
황봉신은 1908년 경 유인석(柳麟錫)의 문인 이진룡이 황해도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의진에 참여하였다. 이후 이진룡이 1911년 10월 경 서간도로 망명하여 조맹선(趙孟善) 등과 함께 군사양성에 주력하자, 황봉신은 이진룡 의진의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황봉신은 1916년 9월 조맹선(趙孟善)·이진룡(李鎭龍)·황봉운(黃鳳雲)·김원섭(金元燮)·김효선(金孝善)·한치현(韓致賢)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들어와 평북 영변군(寧邊郡) 팔원면(八元面) 용성동(龍城洞)에서 운산금광의 운송마차를 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 후 만주에서 활동하던 중, 이진룡이 관전현(寬甸縣)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여순(旅順)으로 이송된다는 소문을 듣고, 황봉신은 황봉운과 함께 이송 중인 이진룡을 탈환하려다가 황봉운과 함께 체포되어 1917년 12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받고, 1918년 5월 1일 이진룡·황봉운과 함께 평양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