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립(仲立). 서울 출신. 황종헌(黃鍾憲)의 아들이다.
1859년(철종 10) 경과증광별시문과(慶科增廣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교리·부교리·부수찬을 거쳐, 1875년(고종 12) 동래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서계문제(書契問題)가 발생하여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일본과 협의하기 위하여 당상역관(堂上譯官) 김계운(金繼運)을 부산에 파견하였는데, 일본측의 거절로 회견이 무산되자, 그 책임을 지고 동래부사직에서 면직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징계처분까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