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 순천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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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북도 황주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차축두 · 삿갓모양동기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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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차축두 · 삿갓모양동기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개설

유적은 황주천(黃州川) 좌안 일대의 충적층에 이루어져 있어 외형상으로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1954년 6월 북한의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 의해 조사된 여러 유적들은 대략 1㎞의 범위 안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공사에 따른 조사였던 관계로 구조와 매장상태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내용

돌덧널무덤[石槨墓]은 다른 무덤들과는 5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단독으로 발견되었다. 두께 7∼13㎝의 점판암으로서 뚜껑과 네 벽석을 각 1장씩으로 짜 맞춘 돌널이다. 내부의 크기는 길이 120㎝, 너비 48㎝, 높이 44.5㎝이다. 뚜껑돌은 길이 133㎝, 너비 72㎝로서 긴 축은 북동∼남서로 향해 있었다. 돌널 안에서는 인골조각과 점판암제의 유경양익식(有莖兩翼式) 활촉 4점, 민무늬토기편들이 수습되었다.

덧널무덤[木槨墓]은 규모와 형태를 알 수는 없지만 검게 부식된 진흙 속에서 덧널의 부스러기와 함께 드러난 토기편들과 금속유물에 의해 추정할 수 있었다. 유물의 출토상태는 야간공사에 의해 유물이 수습된 관계로 불명하였다.

출토유물은 청동기로 차축두(車軸頭) 4점, 삿갓모양동기[笠頭形銅器] 1점, 을자모양동기[乙字形銅器] 2점, 관모양동기[管形銅器] 2점, 양산살꼭지[蓋弓帽] 3점, 말관자[馬面裝飾金具] 1점, 동종(銅鐘) 1점, 동경(銅鏡) 2점, 금동제꼬달이 1점, 솔[刷] 1점, 금동제장식못[飾鋲] 3점, 자루솥부속금구[鐎斗附屬金具] 2점이 있었다. 또한 철기류로는 철검(鐵劍) 1점, 갈래창[鐵戟] 1점, 도끼[鐵斧] 2점, 쇠갈모[鐵車轄] 1점, 두귀단지[兩耳壺] 1점, 문고리[扉環] 1점, 관못[棺釘釘] 6점이 있었다.

벽돌덧널무덤[塼槨墓]은 덧널무덤으로부터 약 5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사 당시 이미 천장과 벽의 일부가 파괴되어 있었다. 외방무덤[單室墓]으로서 네 벽의 길이는 각 2m 가량이며 서남쪽으로 짧은 널길[羨道]이 있었다.

사용된 벽돌은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것들로서 궁륭형(穹窿形)의 천장을 쌓는데 쓰인 한 변이 좁은 것 등이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유물은 견질(堅質) 또는 조질(粗質)의 토기편들이 수습되었다.

고구려 돌방무덤[石室墓]은 천장부는 없어지고 널방[玄室]과 널길의 벽체 일부만이 남아 있는 외방무덤이다. 긴 축은 정남북에서 약간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널길은 남북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널방의 크기는 동서 150㎝, 남북 238㎝이며, 널길의 길이는 305㎝였다. 무덤은 크고 작은 판돌로 쌓아올렸으며 벽면과 바닥에는 회를 발랐다. 출토유물로는 철제관못 5점, 문고리 1점 및 약간의 인골편이 있다.

참고문헌

「황해북도 황주군 순천리 상동 유적조사 정리보고」(『고고학자료집』 1959년 2집, 과학원출판사)
집필자
지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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