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6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220수, 권2∼5에 서(書) 119편, 권6에 잡저 10편, 권7에 서(序) 9편, 기(記) 12편, 권8에 지발(識跋) 12편, 잠명(箴銘) 4편, 상량문 4편, 권9에 제문 21편, 묘표 2편, 권10에 묘지명 12편, 묘갈명 3편, 비문 2편, 권11에 행장 9편, 전(傳) 1편, 권12에 부록으로 행장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의 「여대산이상정(與大山李象靖)」은 스승 이상정에게 네다섯 차례에 걸쳐 학문의 방법과 학문하는 가운데 생긴 의문에 대하여 질의한 내용이다. 또한 이상정이 보내준 「경겸중화도(敬兼中和圖)」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학문은 순수성을 중요시하는 것인데 공연히 상을 세우고 구차하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오히려 학자들의 의문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이었다. 또한, 「경겸중화도」와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으니 이는 그 모방에 지나지 못한 것이라고 논하였다.
「창명집구도(牕銘集句圖)」는 선현들의 잠언과 찬언들을 모아 『창명집』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중앙에는 경(敬)자를 붙여 모든 항목을 총괄하도록 하였다. 「천학종지도변(天學宗旨圖辨)」은 당시 전파되기 시작한 천주교에 대한 평론이다. 천주교가 불교와 같이 의리에 맞는 것 같으나 실은 의리에 위배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신봉할 가치가 없다고 강조하며 강력하게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난리일기서(亂離日記序)」에서는 병산(屛山)에 가서 남업(南礏)의 『병자호란일기』를 보고 병자호란의 전말을 분명히 알게 되었으며,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강화할 때 청인들에게 당한 모욕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로하였다. 이 밖에 선현들의 교훈을 가려서 실천의 지표로 삼았던 「좌우명(座右銘)」, 이상정의 죽음을 애도한 「제대산이상정문(祭大山李象靖文)」, 글을 읽으면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바로잡은 「독서유록(讀書謬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