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병화(兵火)로 불에 타 사라져 보은향교(報恩鄕校)랑 합쳤다가 1611년에 다시 지었다. 1924 · 1941 · 1952 · 1971년에 각각 중수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동무(東廡) · 서무(西廡) · 동재(東齋) · 서재(西齋)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을 앞에 두고 뒤에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대성전은 맞배지붕집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지어졌고, 1952년 지붕을 해체 · 보수하였다. 명륜당은 팔작지붕집으로 정면 5칸, 측면 규모로 2층의 누문(樓門) 형식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1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소장전적은 판본 4종 5책, 사본 9종 31책이 있는데, 이 중 『교생초안(校生草案)』 · 『병부사문교생안(兵符赦文校生案)』 · 『향교유계안(鄕校儒契案)』 · 『교노재직부속보직안(校奴齋直付屬保直案)』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