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영조 때 효자 정방(鄭枋)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
구성 및 형식
내용
그가 효자로 이름을 떨친 것은 9세 때부터였다. 그의 집이 몹시 가난하여 세곡을 내지 못하게 되어 학질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옥에 갇히게 되자 아홉살의 어린 나이로 관가에 들어가 아버지 대신 자기를 가두고 아버지를 풀어달라고 울며 하소연하였다.
당시의 현령 조최(趙最)도 감복하여 그를 가두고 아버지를 풀어주었다. 감옥에서 6, 7도의 매를 맞고 양다리가 부르트고 부었으나, 그 매맞은 다리를 끝내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한다.
이러한 효행 사실을 「효자가」에서는 “관령(官令)이 지엄(至嚴)ᄒᆞ야/노친(老親)을 수금(囚禁)ᄒᆞ니/그 나히 몃치런고/구세(九歲) 동자(童子) 바랏ᄒᆞ다/관문(官門)을 초견(初見)커던/달초(撻楚)ᄂᆞᆫ 무ᄉᆞᆷ일고/지정간(至情間) 이 말 듯고/옥문(獄門)밧긔 왕문(往門)ᄒᆞ니/눈물 흔적 전혜 업고/태연(泰然)이 소어(笑語)ᄒᆞ니/효자(孝子)로다 효자로다/이 아ᄒᆡ 효자로다.”라고 읊고 있다.
“가을 밧테 들닌 모개/주어오면 친량(親糧)이다.”라고 읊은 것은 9세 때 학질에 걸린 아버지의 병이 3년 동안이나 낫지 않자 들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다가 미음을 쑤어드린 것을 노래한 것이다.
이어서 “친병(親病)을 당ᄒᆞ야서/지성(至誠)ᄒᆞᆫ 반디불은/혼야(昏夜)의 인도(引導)ᄒᆞ고/귀신(鬼神)의 전(傳)ᄒᆞᆫ 말리/성약(成藥)을 쓰라 ᄒᆞᄃᆡ/병중(病中)의 적구(適口)ᄒᆞᆫ 것/비시(非時)라 어이ᄒᆞᆯ고/어름 우희 ○ᄂᆞᆫ 거북/왕상(王祥)의 이어(鯉魚)런가.”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14세 때 아버지가 중환을 앓는데, 의원이 자라를 구해오라 하므로 겨울날 얼음을 깨고 자라를 잡아온 것을 노래한 것이다.
“상분도천(嘗糞禱天) 못다하야/단지용혈(斷指用血) ᄒᆞ난고나.”는 아버지가 운명하려 하시자, 아버지의 병세를 알아보기 위하여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면서 손가락을 잘라 수혈한 것을 노래한 것이다.
전우창의 손자 태관(泰貫)도 효자로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효자가」 후반부에서는 그 효행도 일부 노래하고, 아울러 나라에서 효자 정문이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정방의 효자가고」(하성래, 『한국언어문학』10,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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