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병자호란·인조반정 등 작자가 겪은 역사적 대사건들을 시대순으로 읊은 장편 한역가사이다. 본래 한글로 지은 것인데, 현재 한글본은 전하지 않으며 한역본만 『경주정씨세고』·『수남방옹유고(水南放翁遺稿)』에 전한다.
『경주정씨세고』는 1862년(철종 13)에 정훈의 8대손 정희진(鄭熙鎭)이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따라서 「우희국사가」는 8대손 정희진이 한역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훈의 손자 정휴(鄭庥)가 문과에 급제한 뒤 할아버지의 문집을 간행할 목적으로 이웃에 사는 박세채(朴世采)에게서 행적과 서문을 받은 것을 보면, 정휴가 한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가사의 제목 밑에는 작은 목활자로 “만력 계미(1583년)로부터 숭정 정축(1637년)에 이르기까지 나랏일에 마디마디 근심하며 충성하여 항문으로 피를 쏟으니 참으로 통곡이 심한 바라 이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우희국사가」는 정훈이 말년에 나랏일을 근심하고 통곡한 나머지 항문으로 피를 쏟는 병을 앓으며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가사는 “띠집 긴긴 밤에/자지 않고 홀로 앉아/고금을 생각하니 슬프고 어지럽다/우스운 일 많고 많다. 꿈 같은 이 소식을/후생이 알리야.”로 시작되는 1563년(명종 18) 정훈이 태어나 20여년 평화로운 날을 보내다가 1583년(선조 16) 이탕개(尼湯介)·율불니(栗不尼) 등 오랑캐가 함경도 경원부를 침략한 일로부터 1637년(인조 15) 삼전도(三田渡) 항복에 이르기까지의 나라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노래한 사실들을 보면 1587년 왜의 침범으로 인한 녹도만호 이대원(李大元)의 순국,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도요토미(豊臣秀吉)가 겐소(玄蘇)를 파견한 일 등이 있다.
이어서 임진왜란이 일어나 신립(申砬)이 배수진을 쳤으나 패하고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게 된 일, 명군의 내원, 심유경의 강화, 임해·화순 두 왕자가 포로가 된 일 등을 적고 있다. 또한 이 가사에는 고경명 부자의 순국과 조헌·곽재우의 항전, 이순신이 승전한 일에 이어 원균의 패주, 진린·이여송 등 원군의 내원을 노래한다.
선조의 죽음과 광해군의 등극이나 폐모사건, 인조반정, 허균의 역모, 이괄의 난을 비롯하여 정묘호란, 병자호란, 남한산성 파천, 삼전도 항복, 소현세자가 인질로 잡혀간 일, 심양으로 잡혀간 3학사의 죽음 등 모두 「우희국가사」에서 읊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이 가사는 우리 나라 전쟁가사의 백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