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씨부인(丁氏夫人)이 지은 채제공(蔡濟恭)의 전기.
구성 및 형식
내용
그 뒤 1792년 겨울, 채제공이 천주교의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일시 장단(長湍)에 부처되었다가 그 해 동짓날 돌아올 때, 정조가 홍제원 · 모래고개[沙峴]를 거쳐 서울로 오는 길목마다 발발이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묻는 일, 정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수원 현륭원(顯隆園)으로 옮기고 화성 성역(城役)을 시작하면서, 그 일을 채제공에게 맡긴 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정조가 채제공을 매우 신임했음을 알려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에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통한이 채제공의 시각을 통해 넘쳐흐르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고 통곡하는 모습을 “천원(遷園)하실 때에 우러러 우리 성상의 입으신 바 옷소매에 눈물이 흘러 피되어 점점이 붉어 젖으심을 보오니.” 하고 기록한 대목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뒤 아무도 모르게 채제공에게 써 준 ‘금등(金滕)의 문자’에 대해서도 약간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국가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9월 10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전기문학의 새 봉우리」(하성래, 『문학사상』61, 19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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