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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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단체
1927년 부산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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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7년 부산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운동단체.
내용

1927년 봄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으로 동래방면에서 통학하고 있던 김규직(金圭直)·양정욱(梁正彧)·윤태윤(尹兌潤)·김봉갑(金封甲)·윤호관(尹昊寬, 또는 尹昊寬·尹昊權)·윤병수(尹炳洙) 등 10여 명의 학생이 민족정기의 함양과 항일투쟁을 목표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독서를 하는 한편, 월간지 『흑조(黑潮)』제작해 비밀리에 학우들에게 배포, 항일정신을 고취하고 동지의 규합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학생 중심의 독서회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1927년 가을 김규직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고 독서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사회인 여러 명과 연합해 흑조회를 결성하였다.

이와 같은 조직 개편은 조직강화, 동지 규합 및 항일투쟁을 보다 활발하게 전개하기 위해서였다. 대표에 김규직이 선출되었고, 종래와 같이 매월 회합을 가지며 『흑조』를 발행하였다. 조직은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 사이에 확산되어갔다.

1928년 6월에는 흑조회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비교육적인 교사를 배척하기 위한 항일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일제 경찰이 동맹휴학 주도 학생을 찾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 다녀오던 양정욱이 귀국 연락선에서 잡혀 조사를 받다가 흑조회 활동이 드러나 간부 9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은 동래서를 거쳐 부산형무소에 구금되어 1여 년 예심기간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그 결과 김규직은 비참하게 옥사했고, 일반인 유진흥(兪鎭興)은 병보석으로 가출옥했으나 병사하였다.

1929년 9월 24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윤병수는 불경죄까지 추가되어 징역 3년을, 양정욱·최명인(崔鳴寅, 또는 崔命寅)은 징역 2년을, 윤태윤·윤호관 및 일반인 최장학(崔章學)·어소운(魚小雲)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양정욱은 그 뒤 고문 후유증으로 병보석되었으나 죽고 말았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1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정세현, 일지사, 1975)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한국근대학생운동조직의 성격변화」(조동걸, 『한국근대민족주의운동사연구』, 일조각,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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