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고구려 시조인 주몽왕이 졸본천(卒本川)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그런데 『위서(魏書)』에는 주몽왕이 부여에서 남하하여 흘승골성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는데, 이곳은 곧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비류곡 홀본서성산(沸流谷 忽本西城山)’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고구려 최초의 도성인 홀승골성은 지금의 환인현(桓仁縣)인 졸본천유역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 성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부이강과 혼강(渾江)의 합류지점에 있는 요령성(遼寧省) 환인현의 오녀산성(五女山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오녀산성은 해발 820m의 험준한 산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장방형의 형태로서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 긴 편이다. 산의 중간부분을 석재로 쌓았다. 성벽은 초기의 축조방식인 이른바 간타루법(干打壘法)으로 축조하였다. 성의 동서길이는 300m, 남북은 1㎞ 정도이다.
성문은 한 곳에 있는데 남쪽으로 나 있다. 성안은 넓고 평탄하며 중간에 샘이 있다. 샘 주위는 석판으로 네 벽을 쌓아 장방형의 연못을 형성하고 있는데, 성안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다. 그 밖에 주몽왕 때 건립된 궁전과 신묘(神廟)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리왕은 이 성이 험준한 산 위에 있어 불편함이 많음을 깨닫고 골천(鶻川)에 이궁(離宮)을 세우고 양곡(凉谷)에는 동서 두 궁실을 지었다. 이 성은 서기 3년(유리왕 22) 10월 국내성으로 천도할 때까지 모두 40년간 고구려 최초의 도성으로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