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석전의궤(釋奠儀軌)』에 1776년 12월 24일의 ‘대성전 중수시고유문’과 이듬해 3월 21일의 ‘환안고유문’이 실려 있는데 이 때 대성전이 퇴락하여 중수하였다고 하며, 1803년 윤 2월 서 · 동무가 퇴락하여 중수하고, 또 1830년 대성전에 기와 공사를 하였다. 1950년 6 · 25동란 때 대성전과 동무(東廡)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고, 기문(記文)마저 없어져 중수기록을 알 수 없다.
1953년에 명륜당과 수복실(守僕室)을 신축하였고, 서무 · 동무를 복원하였다. 1970년에 대성전의 번와작업(飜瓦作業), 1971년에 대성전의 단청 보수, 1975년에 동재 보수를 하였다. 1990년대에 명륜당을 설립하고, 1996년에 태화루를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맞배지붕 겹처마의 대성전, 우진각지붕 홑집의 명륜당, 각 4칸의 동무와 서무(西廡), 수복실, 사주문(四柱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201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소장전적은 거의 산실되었고, 1958년에『흥해향교유림안(興海鄕校儒林案)』을 간행하였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