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일은 북한의 채탄돌격운동인 ‘김회일운동’의 장본인으로 북한에서 전개된 대중적 사상의식인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통해 증산운동을 주도한 사람이다.
1909년 2월 29일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였다. 해방 이전에는 철도국평북 정주 기관구장을 했고, 6․25전쟁 이후에는 철도상, 교통상을 역임하였다. 1958년 7월 프라하 사회주의 국가 교통상회의에 참가하였고, 1965년 3월에는 철도대표단장으로 베트남민주공화국을 방문하였다. 1981년 11월에는 철도운수부문 열성자회의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김회일은 철도상, 교통상뿐만 아니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 중앙위위원을 역임하였고, 1996년 11월 2일 사망 당시엔 당 중앙위원, 중앙인민위 경제정책위원회 참사 등을 지냈다.
1946년 11월과 1947년 2월에 실시된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은 북한에서 전개된 최초의 대중적인 사상의식 개조운동으로 ‘문맹퇴치운동,’ ‘곡식헌납운동,’ ‘생산돌격대운동’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었다. 이들 운동은 군중집회를 열어 서로 토론하며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며, 진행과정에서 ‘곡식헌납운동(애국미헌납운동),’ ‘생산돌격대운동(채탄돌격대운동)’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 중 생산돌격대운동은 정주군 기관구 철도기관사 김회일이라는 노동자의 자발적 제의에 의해 확산된 운동이라고 당에 의해 선전되었고, 그를 내세워 1947년 1월부터 ‘김회일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1947년 1월 16일 북조선로동당은 평북 정주지구 철도종업원대회에서 기관사로서 채탄운동을 발기한 김회일을 기념하고, ‘김회일채탄돌격대’를 조직하여, 채탄돌격운동을 강화한다는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1월 20일에는 김일성이 김회일과 정주 철도종업원에게 격려 서신을 보내고, 22일에 개최된 직업동맹상무위원회에서는 건국사상총동원운동과 결부시켜 ‘김회일운동’을 광범히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와 같이 김회일은 북한에서 최초로 시작된 대중적 증산운동의 상징으로 받들어졌고, 사망 후 북한 신미리애국역사릉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