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의 북조선 중앙행정기관.
개설
내용
북한은 1945년 9월 20일부로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북한의 단독 공산정권 수립전략을 확정하고, 10월 8∼10일에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11월 19일 ‘5도행정국’이 북한에서 출범하였다.
변천과 현황
이 회의에서는 농업생산과 식량 성출문제, 군수공장의 민수공장으로의 개편, 금융재정문제, 지방기구의 정비․통일 등이 토의되었다. 이후 회의는 ‘인민위원회’로 명칭이 통일되고, 면․군․시․도 인민위원회의 위계구조가 결정되었다.
치스차코프는 ‘북조선5도인민위원회연합회의’에서 북조선 각 도 중앙을 창설할 것을 소련 당국에 제안하였고, 1945년 11월 19일 ‘북조선5도행정국’이 발족하여, 10개 국이 조직되고, 각 국의 국장이 임명되었다.
5도행정국은 공식적으로 서울의 인민공화국이나 중앙인민위원회와 소련군의 합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북조선의 각 도인민위원회와 소련군사령부 민정부 와의 교섭을 통하여 발족하였다.
1946년 2월 8일에 북조선5도행정국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이후 북한에 친소공산주의국가체제가 갖춰지자 1947년 2월에 ‘임시’를 떼고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이름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소련이 철군한 후 북한은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시기적으로 볼 때 북조선 쪽이 선제한 것은 ‘서울중앙’의 대회가 대표하는 지역의 범위를 남조선에 한정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5도행정국은 공식적으로 서울의 인민공화국이나 중앙인민위원회, 소련군의 합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북조선의 각 도인민위원회와 소련군사령부 민정부와의 교섭을 통하여 발족하였다. 이는 최초로 소련군의 인민공화국에 대한 의사 표시가 가시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참고문헌
-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서동만, 선인, 2005)
- 『북한현대사101장면』(고태우, 가람기획, 200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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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소련의 정치가(1879~1953). 시월 혁명 때에 레닌을 도왔으며, 레닌이 죽은 후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였다. 독재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1941년 수상에 취임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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