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장 및 대학신문 편집국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서양근대사연구』 등을 저술한 서양사학자.
개설
한국전쟁 시기 미군 전사관으로 활동했으며, 1952년에는 '역사학회' 창립, 1958년에는 '한국서양사학회'의 창립에도 관여했다. 1953년부터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출강하였으며, 연세대학교에서 부교수를 지내다가 1961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학과 서양사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1963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에서 연구하였다. 이후에도 혁명사에 관한 논문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였으며 1975년「Maximilian Robespierre의 정치사상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행정에 관여하여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편집국장, 교양학부 부장, 재외국민교육연구소 소장, 인문대 학장을 지냈다.
1980년 대학 행정에서 물러나 교수와 연구에 몰두하였다. 1982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1988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기념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88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90년 서울대 인문대 사학과에서 정년으로 퇴임했다. 이후 명예교수로 지내다 2001년 7월 사망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한편 로베스피에르와 크롬웰에 관한 연구는 한국의 개발독재에 대한 시사평론으로 이어졌다. 서구 학문의 이해에 기반한 근대화와 산업화에 대한 시사평론은 당시 한국 사회의 지성들에게 사회 비판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어서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학교행정에 오래 참여하면서 학문적 활동이 뜸하여 개발독재에 암묵적으로 동조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민석홍 연구의 또 다른 분야는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학이나 정치경제학을 소개한 것이다. 역사학의 입장에서 정치 경제 사회를 정리하여 역사 연구 방법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자본주의와 종교라는 정신적 유산과 봉건세력의 몰락과 근대 세력의 형성에 대한 탐구는 문헌고증에 매몰되었던 역사 연구에 역사사회학의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사회세력의 갈등과 극복과정을 역사적으로 구명하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또한 프랑스 영국 미국 혁명에 관한 연구서와 문화에 관한 저작들 번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불모지이던 서양사학계에 기초적인 사실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프랑스혁명에 관한 일련의 번역서들은 서구에서 형성된 프랑스혁명에 관한 역사 연구 방법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업들이었다. 이를 통하여 한국 사학계는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는 시각과 연구 방법론의 개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서양근대사연구』(민석홍, 일조각, 1975)
- 『두산세계대백과』(두산동아, 1996)
- 『앞서 가신 회원의 발자취』(대한민국학술원, 대한민국학술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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