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노블(W.A.Noble, 魯普乙) 등이 해주에 있는 남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교를 설립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기 「사립학교령」에 의해 의창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1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사립해주의창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의창학교는 보통과 4년, 고등과 3년 과정을 운영하였다. 1908년 의창학교 학생들은 모두 단발을 감행하고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1921년 3월 사립해주의창보통학교 교장 와치(V.H. Wachs, 王義施)의 주도하에 9명이 졸업하였는데, 당시 재학생은 129명이었다. 1923년 학부형들의 의연금과 미 감리교 선교부 감독 웰치(H.Welch, 越就)의 기부로 신교사를 지어 해주 남산 아래 남천동으로 이전하였다.
1924년 4월 25일 해주지역의 학교 학생 및 시민 250여 명이 용당포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일본 구축함을 관람하려다 거친 바람으로 배가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불행히도 이 사건으로 의창보통학교 학생 88명중 26명이 익사하였다. 이후 미국 감리교 선교 본부의 지원금 감소로 학교재정이 어려워 폐교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해주 오씨 집안의 기부로 학교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고, 설립자도 1928년 오용환(吳龍煥)으로 변경되었다.
1930년에는 학생수가 233명으로 늘어났고, 1936년에는 교사 6명에 학생 380명이 재학하였다. 박원백(朴元百, 1912년), 곽상익(郭相益, 1922년), 김현수(金賢洙, 1926년), 홀(W.Hall, 賀樂 1931~1936) 등이 교장직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