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 선교사 로저스(M. Moud Roges, 南尊敬)가 여자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1912년 조선총독부 「사립학교령」에 의해 4년제 보통과정, 4년제 고등과정을 운영하는 여자 사립학교로 설립 인가 받았다.
보신여학교 학생들은 3.1운동 당시 교장실에 모여 태극기를 제작 배포하는 등 민족운동에 앞장섰고, 졸업생들은 보신남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보신교우회를 조직하여 학생대운동회를 개최하는 등 성진지역의 청년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2년 당시 약 25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원은 보통과 고등과 각각 30명이었다. 교과목은 수신, 국어, 조선어 및 한문, 성경, 산술, 이과, 창가, 체조, 도화, 재봉 및 수예였다. 조선어 및 한문이 매 학년 8시간의 수업시수로 가장 많았고, 국어와 산술은 각각 매 학년 5시수였다. 그 다음으로 성경이 매 학년 4시수로 많은 시수를 차지하여 기독교계 사립학교 교과과정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1922년 2만원의 비용을 들여 80여 평의 3층 교사와 기숙사를 신축하였다. 선교회에서 점차 고등과를 축소하고 유치원을 설립 운영하기로 함에 따라 고등과는 1926년 2년으로 축소되었으나, 1932년 3년제 가사과 운영으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 보신여학교에서 여자성경학원을 운영하여 부녀자들에게 지리, 위생, 산술, 조선어 신구약 성경 등을 가르쳤다. 또 유치원 보모 강습회 등을 개최하여 유치원 교사 양성교육을 하였다. 김상필, 이금산 등이 교사로 근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