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학교는 선천 지역의 조선인 기독교 지도자 및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의 협력에 의해 1906년 9월 설립된 기독교 선교계 중등 사립학교이다.
1905년 7월 선천의 조선인 기독교 지도자들인 양전백, 김석창 등이 중등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중등학교 설립을 위해 선천중학회라는 설립기성회를 조직함으로서 시작되었다.
휘트모어(Norman C. Whittemore(위대모, 魏大模)를 교장으로 추대하고, 1906년 9월 선천읍의 교회당을 빌려 26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1909년 2대 교장으로 매큔(George Shannon McCune, 윤산온, 尹山溫)이 부임하여 교회 및 학생들의 자립 자조를 위해 실업교육을 강화하였다. 당시 휴 오닐(Hugh O’Neill) 여사가 죽은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1만 5000불을 기부하여 학교의 발전에 공헌하였는데, 선교회에서는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휴 오닐 주니어 아카데미(The Hugh O'Neil Jr. Academy for Boys)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숙사를 증축하고 노동 학생을 위해 목장 및 공업소 등을 설치하였다.
1910년 실업부(Industrial Department)에서 57명의 학생들이 책 만들기, 농업, 수위, 목수 등의 다양한 일을 하며 학비를 보조받았다. 1911년 9월에 153명이 학생이 다니고 있었지만, 105인 사건으로 양전백과 김석창 등 교사와 학생 대거 검거되어 어려움을 겪었다.
1927년 미국경제불황 여파로 선교회 경영 학교들의 통합논의가 이루어져 보성여학교와 합동으로 경영하게 되어 처음으로 조선인 교장 장리욱이 취임하였다.
신성학교는 1931년 3월 지정학교로 인가받았으나 조선총독부의 선교교육 불허에 저항하며 1938년 선교회는 폐교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선천의 오씨 문중 일가의 기부로 조선인 위주의 별도의 재단법인을 만들어 학교를 인계받았다.
당시의 교육과정은 4년제 과정으로 성경, 국어, 일어, 국사 및 지지, 산술 및 대수 기하와 부기, 광물 식물 동물 생리 위생, 화학 물리, 실업, 자재화, 학교체조, 창가, 영어, 현행제도 및 경제 대의 등을 교과를 가르쳤다. 3년간 약 70여 명의 학생을 가르쳤고, 1909년 제1회 졸업생 9명을 배출하였다.
선교회로부터 매달 30불씩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였는데,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는 선교잡지『코리언 미션 필드(Korean Mission Field)』에 이 학교를 선천소년학교 (The Boys Academy of Syen Chun)로 소개하였다.
1942년 9월 선천중학교로 개칭하였고, 1980년 경기도 안양시에서 안양 신성중고등학교로 재건하였다. 졸업생으로는 백낙준, 고병간, 계훈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