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학회

  • 교육
  • 단체
  • 일제강점기
1908년 3월 서울에서 결성되었던 애국계몽운동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4년
  • 강명숙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08년 3월 서울에서 결성되었던 애국계몽운동단체.

개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한만용(韓晩容), 정현(鄭炫) 등을 중심으로 현역 및 퇴역 군인들이 모여 인우회(仁友會)라는 친목회를 결성하였다. 학회명은 회장 한만용이 주장하여 보인학회(輔仁學會)라고 하였는데,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에서 따온 것이다.

설립목적

친목회를 모체로 하여 교육열이 강한 경성부 내의 유지 및 인근 마을의 주민들을 모아 1908년 3월 보통교육 및 문화의 발달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보인학회를 결성하였다. 초대 회장으로 전참서관 한만용(韓萬容)을 추대하고, 총무는 부령 안종환(安宗煥), 평의원은 육군법원장 엄주익(嚴柱益) 등 20여 명으로 구성하였다.

기능과 역할

1907년 4월 주요사업으로 소학교 설립과 인재양성 등을 결의하고 학교 설립을 준비하였다. 학교 설립과 그 취지가 알려지자 공생사(共生社), 영익사(永益社), 내자사(內資社)등의 여러 계 조직과 인력거꾼, 기생, 상인, 청소부, 노동자 등이 학교 설립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1908년 6월 한성부 서부 인달방(仁達坊,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수동 145번지)에 조그만 기와집 한 채를 마련하여 보인학교를 개학하였다. 수업연한 4년의 초등 수준의 사립학교로서 45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다.

현황

학회 결성 1년 후인 1909년 학부에서 조사한 학회 상황에 의하면, 보인학회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공병 중좌를 지낸 바 있는 퇴역군인 김기원(金基元) 등이 대표를 맡았고, 회원 405명, 유지 경비 연 163만 6500원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서북학회, 교남교육회, 호남학회 다음으로 가장 많은 회원을 가진 학회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보인학회는 대한제국 말기에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애국계몽학회로, 보인학교를 설립 운영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참고문헌

  • - 『대한매일신보』(1907.3.9; 1907.4.16)

  • - 『황성신문』(1908.5.21)

  • - 『동아일보』(1921.10.25)

  • - 『보인70년사』(보인 중·상업고등학교 편,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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