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박기양, 서상면, 신해영 등의 전현직 관료들이 서부 창동(倉洞)의 홍엽정에 광성학교를 설립하였다. 학생들이 증가하자 남문 내의 상동(尙洞)으로 옮겨 주간과 야간으로 운영하였다.
1900년 학교명을 광성상업학교로 바꾸고 3년과정으로 산술, 부기, 일본어, 중국어, 상업학, 경제학, 화폐론, 상공, 역사, 지리, 은행론, 상법, 국제법, 재정학, 내국지리, 무역실무 등을 가르쳤다. 다시 장소를 양동(陽洞)으로 옮겨 1905년 사립학교로 학부의 인가를 받았고, 1907년 3월에는 사립광성실업학교로 교명을 개명하였다.
1907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관사립학교 추계연합운동회에 참여하였고, 또 매주 토요일에는 학생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대한제국시기 활발한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황성신문』에서는 광성실업학교의 개학, 방학, 시험, 졸업식, 학생모집 등을 빈번하게 소개하였다.
1908년에는 3개월 과정의 측량과를 설치 운영하였고, 1910년에는 오후 4시반에 수업을 시작하는 영어속성과를 설치하여 저렴한 수업료로 수업을 하였다.
1910년 5월 졸업생 9명을 대상으로 제7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졸업식은 교문에 국기를 내걸고, 다수의 내외빈이 모인 가운데서 이루어졌는데, 1908년 졸업식에는 학부대신 이재곤(李載崑, 1859~1943)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졸업생에게는 졸업증서와 연필 공책 지도서적 등의 상품이 주어졌다.
1904년 주간부에 입학하여 1907년 졸업하고 관립공업전습소 기수로 임명된 졸업생 강재형은 일어, 미술, 부기, 이화학, 광물학, 염색술 등을 배웠다고 하며, 야학부에 입학한 최규동은 주로 일어와 산술을 배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