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51.5㎝, 가로 35㎝ 크기의 7절 1첩이며, 목판본과 필사본이 혼합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불리십도(弗離十圖)』의 구성은 표지와 목록, 그리고 저자의 초상(肖像)이 앞쪽에 배치되어 있다. 특히 3면에 수록된 초상화의 왼쪽에는 ‘김기동 호석계 자계명 광산후인상 본도시육십삼세(金箕東號石溪字啓明光山后人像本圖時六十三歲)’라는 설명이 있어서 『불리십도』가 김기동의 작품임을 알려 준다.
그 뒤에 제1태극음양후도(第一太極陰陽候圖), 제2이기생물지도(第二理氣生物之圖), 제3심통성정전도(第三心統性情全圖), 제4심성정선악도(第四心性情善惡圖), 제5학용합일지도(第五學庸合一之圖), 제6서명지도(第六西銘之圖), 제7소학제사지도(第七小學題辭之圖), 제8성현도통찬도(第八聖賢道統贊圖), 제9학교지도(第九學校之圖), 제10교훈래예지도(第十敎訓來裔之圖) 등 10개의 도(圖)와 ‘불리십도후해(弗離十圖後解)’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불리십도』의 원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자료에는 이 뒤에 필사본으로 된 10개의 도(圖)가 뒤쪽에 첨부되어 있다. 이것은 김기동의 문인이나 후손이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불리십도』는 『성학십도(聖學十圖)』처럼 도설(圖說)을 통해 성리학의 이론적 구도와 개념 등을 이해시키고자 했던 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조선시대에 다양한 도설이 제작되고 활용되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