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尹拯: 16291714)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이다.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의 아들로, 김집(金集: 15741656)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사사하였으나 훗날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의 연을 끊었다. 이 일로 서인(西人)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되었는데,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었다.
8권 4책의 목판본이다.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다.
『명재의례문답(明齋疑禮問答)』은 윤증의 손자인 윤동원(尹東源: 16851741)이 윤증의 문집을 간행할 때 7권 분량의 예와 관련한 문답서를 발췌하였으나 책으로 완성하지는 못했다. 이 자료를 윤증의 족증손(族曾孫)인 윤광소(尹光紹: 17081786)가 정리하여 1743년 전주와 나주에서 간행하였다.
『가례』의 편차에 따라 권1은 「가례도(家禮圖)」와 통례(通禮), 권2는 통례와 관례(冠禮) · 혼례(昏禮), 권3부터 권6까지는 상례(喪禮), 권7은 제례(祭禮)에 관해 내용을 수록하였고, 권8은 국휼중사례(國恤中私禮) · 사례사의(四禮私議) · 왕가례(王家禮) · 예서의의(禮書疑義) 등을 첨가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조목으로 환산하면 모두 679조목이며, 윤증과 문답을 주고받은 사람은 모두 80여 명에 이른다.
『명재의례문답』은 형식적으로는 기호 예학의 종장인 김장생(金長生)의 『의례문해(疑禮問解)』의 전통을 잘 준수한 예서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명재의 예설은 노론계 학자들에게는 거의 외면당하였고, 오히려 남인계 학자들로부터 의례(疑禮)와 변례(變禮)에 조처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