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3월 24일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 창립준비위원회 조직에 관한 결정이 발표되었다. 김일성은 평안남도 대성군에 혁명자유가족학원을 세웠고, 1947년 8월 1일 혁명자유가족학원이 개교되었다. 혁명자유가족학원의 입원식은 9월 1일, 개원식은 10월 12일에 열렸다. 이후 혁명자유가족학원은 1958년 ‘만경대혁명학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혁명자유가족학원은 김일성에 의해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자녀를 부모의 뒤를 잇는 공산주의혁명가로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김일성은 중국 동북지방 및 국내에서 광범위한 실사를 통해 항일유격대 유자녀를 찾아내어 학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유자녀 이외에도 생존한 항일유격대집단의 가족들도 학원에 입학시켰다. 1947년 10월 12일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은 평안남도 대성군간리역의 임시교사에서 개교하였고, 이후 1948년 만경대로 이전하였고, 1958년에는 만경대혁명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혁명자유가족학원은 김일성 권력 형성과 북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능을 담당했다. 학원 출신자들은 6․25전쟁 시기 야전의 중견간부를 맡았고, 1956∼1958년 ‘반종파투쟁’으로 생긴 군대와 정권 기관의 빈자리를 채운 ‘인력원천’의 역할을 하였다.
1947년 개원 당시 혁명자유가족학원 학생들의 연령은 최저 9세부터 23세까지였으며, 남자 296명, 여자 24명, 총 320명이 입학하였다. 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 인민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 등 모두 11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과 과목은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 김일성 동지의 노작, 혁명전통, 조선로동당 정책사 등 정치 및 사상과 관련된 과목이 주류를 이루고 김일성과 당에 관한 수업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인민무력부에 소속되어 재학생들은 모두 장교 복장을 하고 군대식 편제 아래 집체 생활을 한다. 졸업 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교로 진학하거나 장교 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 기용이 보장된다. 현재 만경대혁명학원은 인민학교(4년제) 졸업 후 들어가는 8년제 특수학교로 바뀌었다.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 고위간부와 ‘항일투사’로 불리는 빨치산 출신 자녀들이 입학 대상이다. 남조선혁명가(대남공작원)와 순직한 2급(종업원 1,000∼1,500명 규모)이상 기업소의 지배인과 기사장 자녀들에게도 입학 기회가 주어지며, 별도의 시험은 없다. 전체 학생 수는 800명 정도이고, 교육내용은 6학년까지는 기본적으로 6년 과정의 고등중학교와 같다. 7∼8학년은 단과대학 수준의 군사기술교육 위주로 교과가 편성되어 있다.
현재는 '만경대혁명학원'으로 개칭되어 운영되고 있다.
자유혁명가족학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 가정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학원이 학생들의 유일한 생활근거가 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혁명자 유자녀로서의 집체성을 발현시킬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