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지(藁精紙)는 벼과의 단섬유 식물과 닥나무 등의 장섬유를 혼합해서 만든 종이로 원료에 마디가 있었기 때문에 고절지(藁節紙)로 기록된 경우도 있었으며, 황벽(黃蘗)으로 염색하여 황고지(黃藁紙)라고도 하였다.
고려 고종(高宗, 1211∼1278)의 사람인 김구(金坵)의 문집인 『지포선생문집(止浦先生文集)』에 보면 황고지라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노란색의 고정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조선의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변화와 문화의 발전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종이에 대한 수요가 증가되었고, 이에 종이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 관청인 조지서(造紙署)가 설치되었다. 조지서에서는 늘어나는 종이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종이의 생산 및 확충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종이의 품질개량에도 힘써 고정지는 20세기 초까지 책지(冊紙)와 서화지(書畵紙) 등 일상생활 전반에 다양한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각 지방의 생활환경 조건에 맞는 원료 식물을 사용하여 만들었던 고정지는 대부분 후기로 갈수록 점차 보리나 귀리 등의 함량은 줄이고 만들기 편하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볏짚이 주재료가 되었다. 당시 공급이 모자랐던 종이 재료인 닥을 절약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널리 이용되었기에 현재까지 선장본(線裝本) 형태의 책으로 많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