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다경 기와가마터는 1978년 금장리 기와가마터에서 북쪽으로 약 1.5㎞ 정도 떨어진 들녘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직후의 가마터 유적이다. 이 유적은 경주 금장리 현곡초등학교 진입구로부터 서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위치하는 숫못과 우측의 저수지 사이에 형성된 구릉 하단부에 위치한다. 현재 유적 주변은 수 차례의 경지정리로 인해 대부분 유실되었다. 가마의 잔존상태로 볼 때, 지하식 등요(登窯)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기와·벽돌류[瓦塼類] 340여 점으로서 평기와를 비롯하여 명문기와, 특수기와 등 매우 다양하다. 벽돌은 신라시대의 연꽃무늬[蓮花文]와 통일신라시대 직후에 제작된 쌍록보상화무늬[雙鹿寶相華文]가 대표적이며 이외 다수의 민무늬벽돌이 있다. 이 중 쌍록보상화무늬 벽돌은 앞 측면에 보상화당초무늬와 사슴무늬가 장식되고 그 바닥면에 보상화무늬가 장식되었는데, 안압지 동궁터에서 “調露二年 漢只伐部(조로이년 한지벌부)…”의 명문이 새겨진 같은 벽돌[雁鴨池出土調露二年銘寶相華文塼]이 발견되어 그 제작연도를 확실히 밝힐 수 있었다. ‘조로 2년’은 서기 680년에 해당하는데, 동궁이 이때 창건되었으므로 다경 기와가마터에서 생산, 공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막새는 신라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동일한 것이 황룡사터와 월성에서 확인된다. 암막새는 안압지 주변에 있는 동궁이 창건되었을 때의 기와·벽돌이므로 통일신라시대 직후에 제작되어 공급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경주 다경 기와가마터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명문이 새겨진 벽돌과 같은 형태의 벽돌이 발굴됨으로써 그 제작연도, 공급처 등을 명확히 밝혀낸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