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1, 2의1~3, 권하1의1~2, 2의2~3 (() , ~, ~, ~)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언해) 권상1의1, 2의1~3, 권하1의1~2, 2의2~3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언해) 권상1의1, 2의1~3, 권하1의1~2, 2의2~3
언어·문자
문헌
문화재
간경도감에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언해하여 146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간경도감본.
이칭
이칭
원각경, 대방광원각경,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 요의경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1, 2의1~3, 권하1의1~2, 2의2~3(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諺解) 卷上一의一, 二의一~三, 卷下一의一~二, 二의二~三)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88년 12월 28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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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간경도감에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언해하여 146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간경도감본.
개설

북인도의 고승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漢譯)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불경이다. 일명 『원각경』이라고도 하는데 『대방광원각경』,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이라고도 한다. 고려의 지눌(知訥)은 이를 깊이 신봉하여 요의경(了義經)이라 하기도 했다.

『원각경』은 마음의 본래 성품을 깨달아 그 원만한 깨달음을 실행하도록 강조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경에 대한 대표적인 주석서로 당나라 규봉(圭峰) 종밀(宗密)의 『대방광원각경대소(大方廣圓覺經大疏)』, 『대소초(大疏鈔)』, 『약소(略疏)』, 『약소초(略疏鈔)』 등과, 조선 초기 함허당(涵虛堂) 득통(得通)의 『원각경소(圓覺經疏)』 등이 있으나, 종밀의 주석서가 많이 유통되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한문본과 언해본, 구결본 등이 간행되었다. 불교 수행에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고 있는 경전으로서 그 내용이 대승(大乘)의 참뜻을 잘 표현하고 있어 한국과 중국에서 널리 유통되어 왔다. 『금강경』,『능엄경』,『대승기신론』등과 함께 불교 전문 강원(講院)의 4교과 과정의 필수과목으로 학습되어 왔다.

편찬/발간 경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주석서로서 가장 많이 유통된 당나라 규봉 종밀(宗密, 780~841)의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세조(世祖)가 구결을 단 『어정구결원각경(御定口訣圓覺經)』을 대본으로 혜각존자 신미(信眉)ㆍ효령대군(孝寧大君)ㆍ한계희(韓繼禧) 등이 한글로 번역하고, 황수신(黃守身) 등이 새기고 박아 1465년(세조 11)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본 10권 10책으로 간행한 책이다. 이는 권수제 다음에 수록된 “어정구결(御定口訣)/ 혜각존자 신승신미 효령대군 신보인순부윤 신한계희등역(慧覺尊者 臣僧信眉 孝寧大君 臣補仁順府尹 臣韓繼禧 等譯)”이란 기록과 황수신의 「진원각경전(進圓覺經箋)」 및 간행에 참여한 박원형(朴元亨), 김수온(金守溫) 등 조조관(雕造官)의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서지적 사항

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목판본. 책 크기는 세로 32.7㎝, 가로 23.7㎝이다. 간경도감판 원각경언해본 은 사주쌍변(四周雙邊)에 계선이 있으며[有界],반곽크기는 세로 22.2㎝, 가로 18.5㎝이다. 본문은 9행에 대자 17자, 중 · 소자 21자로 소자쌍행(小字雙行)이다. 인쇄상태가 정교하며 중앙의 판심부에는 상하에 대흑구가 있고(上下大黑口),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로 되어 있다.

첫머리에는 원각경을 올리는 전문(箋文)과 판각에 관여한 사람들의 성명과 직책이 표시되어 있고, ‘교정[校正]’의 인장이 찍혀있다. 끝에는 모두 3차례에 걸쳐 교정했다고 적고 있는데, 마지막장 뒷면에는 ‘중교김계상 삼교함수동박석동(中校金繼湘三校咸洙同朴石仝)’의 묵서지기(墨書識記)가 있다. 그만큼 본문의 내용에 정확도를 기했음을 알 수 있다.

한문 주해 · 본문 및 언해문의 편찬 양식은 목판본 『능엄경언해』와 같으며 『법화경언해』(1463년) , 『선종영가집언해』(1464년) · 『금강경언해』 · 『반야심경언해』와는 대동소이하다.

모두 10책으로, 상(上)1지(之)1∼2, 2지(之)1∼3, 하(下)1지(之)1∼2, 2지(之)1∼2, 3지(之)1∼2로 분권되어 있다. 판각(板刻) 상태는 초인(初印)하여 인쇄가 정교하며 권상 2지(之)3과 권하 1지(之)1의 권수제 상단에 ‘교정(校正)’의 인장이 붉은색 인주로 날인되어 있다.

현재 원간본은 완질이 전해지지 않고, 권하(下) 3지(之)1∼2가 이숭녕(李崇寧)선생 소장으로 전한다. 원간본의 복판으로 1472년(성종 3)에 인출된 책도 있다.

원간본과 인면(印面), 착묵(着墨), 지질(紙質) 등이 같으나, 권두(卷頭)의 내제(內題) 다음에 있는 내용이 일부 바뀌어 있다. 또한 김수온(金守溫)의 발[跋 1472년 6월 초길자(初吉字)]이 있다.

권상(上) 2지(之)1, 2지(之)3[다가와 고조[田川孝三]교수, 상(上) 2지(之)2(서울대규장각), 하(下) 2지(之)1∼2, 3지(之)1∼2(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육당문고) 등이 1472년에 인출된 판본이고, 중간본은 1575년(선조 8) 전라도 안심사에서 복각한 판본이다.

내용

체제는 서문, 본문의 상 · 하편으로 구성된다. 본문의 각 편 분권이 다소 복잡한데 상권은 1과 2로 나누고 하권은 1, 2, 3으로 나눈 후 상1을 다시 1과 2로, 상2를 1, 2, 3으로 나누었다. 하권은 1, 2, 3에 각각 1과 2로 구분하였으며 모두 합치면 11권이 된다.

석가모니가 12보살과 문답한 것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서문은 경 본문에서 말할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한 글로 「원각경약초서(圓覺經略鈔書」, 배휴(裵休)의 「원각경약소서(圓覺經略疏序)」, 그의 스승인 종밀(宗密)의 「원각경서(圓覺經序)」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경의 안목이 되는 부분으로 여래인행(如來因行)의 근본과 과상(果相)을 설하고 있다. 즉, 인지(因地)에 원각을 닦는 자가 모든 현실이 허공의 꽃이요 몽환인 줄을 알면 곧 생사윤회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생사가 곧 열반이 되고 윤회가 곧 해탈이 된다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판본으로 인쇄문화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 가운데 하나로 예로부터 불교전문강원 사교과(四敎科) 과정의 필수과목으로 학습되었다.

아울러 1446년(세종 28) 『훈민정음(해례본)』에서 국어표기법이 규정되어 정음 초기의 문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문헌에 이르러 ㆆ과 각자병서가 폐지되는 큰 분수령을 이룬다는 점에서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한국전적인쇄사』(천혜봉, 범우사, 1990)
「원각경언해 해제」(정우영,『역주 원각경언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6)
「세조대 간경도감의 설치와 불전 간행」(박정숙,『부대사학』20, 1996)
집필자
옥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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