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서각에 소장된 숙빈 최씨 관련 사료들은 1964년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 장서각에서 칠궁의 자료들을 일괄 인수할 때 편입된 것으로,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숙빈 최씨는 최효원의 딸이자 영조의 생모로 1718년(숙종 44) 49세에 별세하였다. 숙빈 최씨의 능묘는 양주 고령동 옹장리(현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소재하였고, 1753년(영조 29)소령원으로 봉해졌다. 효심이 지극했던 영조는 최씨의 무덤 근처에 막을 짓고 무덤을 받들었으며, 친필 비(碑)와 비각을 4곳에 세우고, 위패는 조선시대 역대 왕이나 추존 왕의 생모인 7명의 후궁을 모신 육상궁에 모셨다.
「묘소도형여산론(墓所圖形與山論)」은 두꺼운 종이에 먹으로 제작한 것으로 계회도의 형식을 빌려 상단에 제목을 쓰고, 가운데 산도(山圖)를 그리고, 하단에는 산론(山論)을 적었다. 이는 능묘 자리로 길지를 택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718년에 제작된 원본일 개연성이 높다.
「묘소석물배열도(墓所石物排列圖)」는 1718년 소령원 석물 배열을 그린 그림이며, 『제청급석물조성시등록(祭廳及石物造成時謄錄)』 중에 봉분 주변의 담장과 비석, 혼유석, 상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등 소령원의 석물 배열을 백묘로 그린 그림과 거의 일치한다.
「묘소도형여산론」과 「묘소석물배열도」는 1718년 숙빈 최씨가 죽은 직후 묘소를 조성하면서 산도 형지를 그린 것과 묘소 일대에 조성한 제청과 석물을 조성한 전례를 기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소령원화소정계도(昭寧園火巢定界圖)」는 능원에 산불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정한 거리까지 초목을 불살라 제거하는 화소(火巢)를 표시한 것이다. 붉은 주선으로 화소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주봉을 중심으로 산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거친 필치의 피마준으로 산수 표현을 하였다. 능묘의 수구(水口)를 점선 묵으로 묘사하였고, 붉은 선으로 파주와 양주 경계를 선명하게 표시하였다. 장서각에 육상궁 냉천정에 보관되었던 묵묘(墨描)로 그린 「소령원화소정계도」의 초본이 소장되어 참조할 수 있다.
「소령원도(昭寧園圖)」는 산도의 형식을 취했으며, 가운데 묘소와 좌측에 제청(祭廳), 우측에 비각(碑閣)을 배열하고 아래쪽에는 전답이 있다. 산수 표현은 피마준과 미점준을 사용하여 묘사하였으며, 황녹색 담채를 가하였다.
「소령원화소정계도」와 「소령원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숙빈 최씨의 묘소를 소령원으로 승격시킨 이후인 1753년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장서각에 소장된 「숙빈최씨묘소도형여산론」의 묘소도형은 양주에 위치한 숙빈 최씨 묘소를 혈자리로 한 산도 형식으로 묘사하였다. 「소령원도」는 소령원 일대 전답과 초옥으로 지은 정면 2칸의 기임각(祈稔閣)과 제청과 제실의 도면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또한 산릉도에 자세히 그려지지 않은 수목들을 수종에 따라 다양한 수지법으로 묘사하였고, 일반 산릉도에서 장식적이고 도식적으로 묘사되는 산세를 미점과 피마준을 담채로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숙빈최씨소령원도 관련 기록화와 『제청급석물조성시등록』은 숙빈 최씨의 사후 장지 선택과 묘역의 석물 조성, 제청의 건립 등 조선 왕실의 능묘 조성 과정을 비롯하여 추숭 시의 현황을 상세히 보여준다. 또한 모친 숙빈에 대한 영조의 추숭 의지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함경북도 소재 조선태조의 4대조 선조들의 능묘와 태조 관련 사적지를 산도 형식으로 그린 『북도각릉전도형』과 함께 조선 왕실의 능묘 문화를 검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