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판(初雕大藏經板)이 불타서 없어지자, 불교를 근간으로 한 민족적 염원을 모아 몽골을 물리치기 위해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간행한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판본 가운데 하나이다. 『유가사지론』은 유가행파(瑜伽行派)의 기본적인 논저로, 인도의 미륵(彌勒)이 설한 것을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이 한역(漢譯)하였다.
이 책은 『유가사지론』전 100권 중 1축 1책으로, 재조대장경의 ‘당(堂)’함(函)에서 ‘선(善)’함까지 수록된 『유가사지론』100권 중 ‘악(惡)’함에 들어 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제책(製冊)은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권자본(卷子本)이다. 판식은 상하단변(上下單邊)으로 광고(匡高)는 22.5㎝이다. 전체 26장인데, 제1장은 권수제(卷首題)에 의해서 22행 14자이고, 둘째 장 이하는 초조대장경의 체제인 23행 14자를 따랐다. 각 장의 크기는 세로 36.8㎝, 가로 49㎝이다. 지질은 재조대장경 간본(刊本) 가운데 초기 인출본에서 쉽게 확인되는 굵은 세로발이 나타나며, 약간 두툼한 특징을 보인다.
이 책은 초조대장경과는 달리 서명, 권차, 장차에 이어 함차를 각 장의 말미에 판미제(板尾題)로 표시하였고, 권말에도 ‘정미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丁未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라고 하여 1247년(고종 34)에 간행하였다는 간기(刊記)를 표기하였다.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유가사지론』권64(보물, 1988년 지정)보다 권의 차례가 앞서면서도 목판에 새기는 작업은 1년 뒤인 1247년에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분담조조(分擔雕造)에 의해 판각 작업이 이루어졌던 당시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유가사지론』전 100권은 본지분, 섭결택분, 섭석분, 섭이문분, 섭사분 등 5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분은 다시 여러 품으로 나누어져 있다.제1본지분은 『유가사지론』의 기본 부분으로 17지(地)를 분별해서 설한다. 제2섭결택분에서 결택(決擇)은 뜻을 밝혀서 의문을 풀어주는 것을 말하는데, 본지분에서 자세히 설하지 못했거나 의문나는 부분을 분별해서 설하고 있다. 순서는 본지분을 따르지만, 제1지∼제2지, 제3지∼제5지, 제16지∼제17지를 통합해서 다루었고, 제14 독각지는 다루지 않았다. 모두 문답식으로 되어 있다. 본지분과 섭결택분은 전체가 12단락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제1 오식신상응지의지(五識身相應地意地)는 제51권∼제57권에 해당하며, 권55인 이 책은 그 중 일부이다.
이 책은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는 해인사대장경을 완성한 직후인 13세기 중∼후기에 인출한 초기 간본으로 인쇄상태가 선명하고 정교하다. 특히 표지 등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며, 현전하는 재조대장경 간본 중에서 고려 때 찍어낸 것으로는 보존 상태가 비교적 온전하여 가치가 높다. 호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재조본 『유가사지론』권99에도 이 책에서처럼 정미세(1247) 간기가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