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소가죽 또는 돼지가죽이 주원료로 사용한 피갑은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다. 『세종실록』에는 작은 철편이나 가죽편을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든 찰갑이 소개되어 있다. 이 찰갑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갑옷으로서 고구려의 기병이 입었던 찰갑이나 고려군의 찰갑과 기본 구조가 동일하다.
한편 실록에 의하면 세조때 저피갑(猪皮甲)의 주재료인 산돼지 가죽의 가격이 폭등하여 저피갑 제작에 문제가 있으니 이를 혁파하여 달라는 지방관의 요청이 있어 소와 말가죽도 재료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피갑은 두정갑과 같이 깃이 둥글고 좌우 섶이 맞닿으며 소매는 팔꿈치까지 닿고 길이가 무릎까지 내려온다. 자황색(赭黃色) 면에 백색 무명 안감을 넣어서 만들고 겉감에는 보상화당초문(寶相華唐草紋)을 검정색으로 날인하였다.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우피(牛皮), 저피(猪皮) 등의 피찰(皮札)을 연철(連綴)하여 안에 붙인 것이 겉에서 보기에는 옷 위에 놋의 못머리만이 정연하게 박힌 것처럼 보인다. 투구는 4개의 철판을 연결하여 둥글게 만들고 마름모꼴의 전비(前庇)를 앞에 부착하였다. 투구에 연결된 목가리개, 귀가리개의 안에도 피찰을 연결하였고 겉에는 당초문(唐草紋)을 날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