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갑 ()

과학기술
물품
조선 후기에 면직물을 13겹 겹쳐 만든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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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면직물을 13겹 겹쳐 만든 갑옷.
개설

면갑은 조총이 무명 12겹을 관통한다고 하여 13겹으로 무명을 겹쳐 만든 조선 말기의 갑옷이다. 1866년 (고종 3) 병인양요 이후 대원군이 김기두와 안윤에게 면으로 만든 배갑(背甲)을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 육군박물관에 면갑 한 벌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갑옷은 무명 30장을 겹쳐 만들었음이 확인된다.

연원 및 변천

1866년 병인양요에서 프랑스와 전투를 치른 조선은 서양의 무력도발에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의 도발에 준비하게 된다. 특히 서양의 총기류의 우수함에 주목한 조선 조정은 총기공격을 무력화시키기기 위한 방도를 찾기 시작했고, 이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그 대비책의 일환으로 방탄 성능이 좋은 새로운 갑옷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1867년, 흥선대원군은 김기두(金箕斗)와 안윤(安潤)으로 하여금 총탄을 막아낼 수 있는 갑옷을 만들게 했다. 새로운 갑옷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실시한 결과 무명 천을 12겹으로 겹치면 조총 탄환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시험 결과에 따라 조선 조정은 무명 천을 13겹으로 겹친 면갑을 제작, 병사들에게 보급했다.

당시 무기제조자였던 김기두와 안윤은 조정의 명에 따라 면갑과 철갑 등으로 실험을 거듭한 결과, 면 12겹에 총탄이 뚫리지 않음을 확인, 면 13겹으로 만든 면갑을 만들어 내게 된다.

병인양요 직후에 만들어진 이 면갑은 곧 조선 병사에 배포 되었고, 1871년 신미양요때 실제로 효용성이 드러나게 된다. 면제 배갑은 실제 총탄을 막아내기는 하였으나, 한여름에 착용하기는 너무 더웠고, 또한 불에 약하여 쉽게 불타버리는 약점이 있었다. 1871년 여름, 강화도를 침공한 미군은 총알세례에도 용맹하게 달려드는 조선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고 있으며, 대포 공격으로 파편에 맞아 불에 붙은 조선군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은 총알을 막아내는 갑옷의 존재에 당황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중 한 점을 포획해 미국으로 가져갔다. 최근까지 스미소니언박물관에 보관되어왔던 것이 세상에 알려져, 이 방탄조끼의 존재가 한국에 알려졌다. 당시에 만들어진 면갑은 육군박물관에 실물이 1점 남아 있으며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과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도 실물이 1점씩 소장돼 있다.

구조 및 형태

면갑은 무명을 여러 겹 겹쳐 만든 갑옷으로 무엇보다 갑옷이 가벼워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형태는 소매가 없는 조끼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길이는 85cm로 상반신을 보호하게 만들었다. 둥그런 형태의 깃에 활동하기 편하게 양 옆이 트여 있다. 어깨의 좌측은 터져 있고 매듭단추를 달았는데 입고 벗기 편하게 하기 위함으로 생각된다. 양쪽 옆트임에는 좌우에 각각 두 개씩 앞 뒤판으로 끈이 붙어 있다. 앞판의 좌우와 뒷판의 상하 좌우에는 검은 색으로 글자와 문양을 찍었다.

육군박물관에 남아 있는 면갑은 무명이 13겹이 아니라 30겹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제조 방법

면갑은 두정갑이나 두석린갑에 비해 제작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 또 다른 장점이다. 이 때문에 장수급이 주로 착용한 두정갑이나 두석린갑과 달리 면갑은 일선 병사들이 주로 착용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국조오례의』
『한국의 갑주』(이강칠, 문화재관리국, 1987)
『한국무기발달사』(김기웅 외, 국방군사연구소, 1994)
『한국군복식발달사』(국방군사연구소, 1997)
『조선시대의 갑주』(박가영, 2003)
『조선의 무기와 갑옷』(민승기, 가람, 2004)
『우리나라의 전통무기』(박재광 외, 전쟁기념관, 2004)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국사편찬위원회 편, 경인문화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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