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거란(契丹) 출신으로 귀화인(歸化人)이다. 명종 때에 산원동정(散員同正)이 되었다. 아버지 위영성(尉永成)이 나쁜 병에 걸리자 의원이 당시 민간에서 유행하던 풍습에 따라 자식의 살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위초가 즉시 넓적다리 살을 베어 만두소를 만들어 먹이니 아버지의 병이 차도가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1185년(명종 15) 왕이 위초의 효행 이야기를 듣고 재상들에게 포상할 것을 의논하라고 분부하자, 홍살문을 세워 표창하고 그의 효행을 역사 기록에 남겼다. 후대에 『고려사(高麗史)』 효우(孝友) 열전에 입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