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우문군을 역임한 관리.
이칭
  • 이칭양장(梁將), 우문군(佑文君)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문군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중국 연남(燕南)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박진훈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우문군을 역임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중국 연남(燕南) 출신. 일명 양장(梁將)이라고도 한다. 양재(梁載)는 왕삼석(王三錫)에게 붙어 권력을 휘두르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샀으며, 왕삼석이 죽자 연경(燕京)으로 돌아갔다. 충숙왕이 원나라에 갔을 때 왕의 총애를 얻어 우문군(佑文君)이 되었다. 그 후 양재는 낭장 조신경(曹莘卿)과 함께 인사행정을 주관하면서 환관들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고 거의 100여 명이나 벼슬을 주었다. 양재의 농간으로 승진한 사람으로는 좌대언(左代言) 조신경, 회의군(懷義君) 최노성(崔老星), 대광 원윤(大匡元尹) 신시용(申時用), 지평(指平) 윤현(尹賢) 등이 있다.

1336년(충숙왕 5) 지공거(知貢擧) 채홍철(蔡洪哲)과 안규(安珪)에게 부탁해 평소 친한 이윤(李閏)을 급제시켰다. 그러자 많은 장사꾼들과 잡류(雜類)들이 양재에게 부탁해 벼슬에 오르려 하였다. 수 많은 사대부(士大夫)들이 양재에 의해 배출되었다.

양재의 장인 왕천우(王天祐)가 재상 이설(李偰), 김원식(金元軾)과 노비 문제로 다투었는데 총랑 윤혁첨(尹奕瞻)이 오랫동안 판결하지 않았다. 이에 양재는 윤혁첨의 직위를 빼앗아 윤현(尹賢)으로 대신하게 하니, 윤현은 즉시 왕천우에게 유리하게 판결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원간섭하의 고려정치사』(김당택, 일조각, 1998)

  • - 『고려후기 성리학수용연구』(변동명, 일조각, 1995)

  • - 『고려후기외교사연구』(장동익, 일조각, 199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