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몽고의 제6차 침입 당시 몽고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모친을 구한 효자. 향리.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년 뒤에 백호(百戶) 습성(習成)을 통해 어머니가 노비로 살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몸값을 내고 어머니를 풀려나게 하려고 서울에 와 두 번이나 신청했으나 두 번 다 허가받지 못하였다.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지 6년째 되던 해 천호(千戶) 효지(孝至)를 따라 몽고 동경(東京)으로 가서, 고려의 역어별장(譯語別將) 홍명(弘命)과 함께 북주(北州) 천로채(天老寨)로 가서 어머니를 찾았다. 몽고 군사인 요좌(要左)의 집에서 노파가 된 어머니를 찾았으나 요좌를 만나지 못해 어머니를 풀려나게 하지 못했다. 한 달 뒤 요좌의 집에 가서 은(銀) 55량(兩)으로 겨우 어머니를 풀려나게 하였으나, 백호(百戶) 천로(天老)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동생 김덕린은 풀려나지 못하였다.
1276년(충렬왕 2) 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귀국했으며, 명주 가까이 왔을 때 아버지 김종연이 이 소식을 듣고 진부역(珍富驛)까지 마중 나와 부부가 서로 만났다. 다시 6년이 지난 뒤 천로의 아들이 동생 김덕린을 데리고 왔으므로 김천은 86냥을 주고 동생을 풀려나게 하였다.
김천은 대몽전쟁기의 대표적인 효자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고려사(高麗史)』 효우(孝友) 열전에 입전되어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시대 대외관계사 연구』(김위현, 경인문화사, 2004)
- 『고려후기외교사연구』(장동익, 일조각, 1994)
- 『고려대몽항쟁사연구』(윤용혁, 일지사, 1991)
- 「『고려사』열전 효우편의 효우설화 연구」(노혜진,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석사학위논문, 2005)
- 「여원간의 인적 교류고」(김위현, 『관동사학』5·6, 1994)
- 「원에 진출한 고려인」(장동익, 『민곡문화논총』11,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1)
- 「고려사 열전에 대한 분석적 고찰」(강성원, 『이화사학연구』17·18,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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