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 때 장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폐행(嬖幸).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89년(충렬왕 15)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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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 때 장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폐행(嬖幸).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병(李㻂)은 용맹함을 과시하기 좋아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으므로 충렬왕대 장군에 임명되었다. 1285년(충렬왕 11)과 1288년(충렬왕 14)에 원나라에 파견되어 매를 바쳤다. 항상 매를 길러 사냥하는 것을 즐겼으며, 참새 같은 작은 새를 잡아 털을 뽑은 후 입으로 씹어 매를 먹이거나 생닭을 갈라서 반 마리를 매에게 먹였다. 충렬왕이 사냥을 좋아하게 된 것은 모두 이병이 유혹했기 때문이었다. 매와 관련된 이러한 이병의 활동 모습으로 볼 때, 이병은 응방(鷹坊)을 관리하던 충렬왕의 심복으로 보인다.

1289년(충렬왕 15)에 갑자기 사망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의하면, 이병이 세상을 떠났을 때 새 주둥이 모양의 돌기가 온 몸에 돋아났다고 하는데, 이는 이병의 과도한 매사냥을 은유적으로 비꼰 기록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원간섭하의 고려정치사』(김당택, 일조각, 1998)
『고려후기외교사연구』(장동익, 일조각, 1994)
「1270∼80년대 고려내 응방 운영 및 대외무역」(이강한, 『한국사연구』146, 2009)
「고려후기 응방의 설치와 운영」(이인재, 『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하현강교수정년기념논총』,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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