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출신지는 수성(守城: 강원도 杆城의 옛 지명)이다. 고려 말에 여러 관직을 거쳐 군기소윤(軍器少尹)에 이르렀다.
왜구가 쳐들어오자 왜구를 피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경산부성(京山府城)으로 가던 중 가리현(加利縣: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동강(東江)에 이르렀으나 배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였다. 왜구가 바짝 추격해오자 어머니가 혼자라도 말을 타고 피하라고 권유하였으나, 이를 따르지 않자 어머니와 함께 밭 사이에 숨었다. 왜구들이 조희참을 잡아 창으로 찌른 후 어머니마저 죽이려 하자 활과 말, 재물을 모두 그들에게 주고 어머니만은 살려줄 것을 애원하였다. 이에 왜구들이 칼로 쳐 조희참을 죽이고 조희참의 어머니는 버려두고 갔다고 한다.
1382년(우왕 8) 경상도체복사(慶尙道體覆使)로 임명된 조준(趙浚)이 조희참에 관한 일을 조정에 보고하자 사적을 새긴 비석을 세워 표창하였다. 후대에 『고려사(高麗史)』 효우(孝友) 열전에 입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