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참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군기소윤을 역임한 문신. 효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수성(守城)
주요 관직
군기소윤
관련 사건
왜구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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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후기 군기소윤을 역임한 문신. 효자.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출신지는 수성(守城: 강원도 杆城의 옛 지명)이다. 고려 말에 여러 관직을 거쳐 군기소윤(軍器少尹)에 이르렀다.

왜구가 쳐들어오자 왜구를 피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경산부성(京山府城)으로 가던 중 가리현(加利縣: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동강(東江)에 이르렀으나 배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였다. 왜구가 바짝 추격해오자 어머니가 혼자라도 말을 타고 피하라고 권유하였으나, 이를 따르지 않자 어머니와 함께 밭 사이에 숨었다. 왜구들이 조희참을 잡아 창으로 찌른 후 어머니마저 죽이려 하자 활과 말, 재물을 모두 그들에게 주고 어머니만은 살려줄 것을 애원하였다. 이에 왜구들이 칼로 쳐 조희참을 죽이고 조희참의 어머니는 버려두고 갔다고 한다.

1382년(우왕 8) 경상도체복사(慶尙道體覆使)로 임명된 조준(趙浚)이 조희참에 관한 일을 조정에 보고하자 사적을 새긴 비석을 세워 표창하였다. 후대에 『고려사(高麗史)』 효우(孝友) 열전에 입전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유교정치사상의 연구』(이희덕, 일조각, 1984)
「『고려사』열전 효우편의 효우설화 연구」(노혜진,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석사학위논문, 2005)
「고려사 열전에 대한 분석적 고찰」(강성원, 『이화사학연구』17·18,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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